한국과 미국 간 FTA 재협상이 12월 3일 타결되었습니다. 지난 2006년 6월 FTA 협상을 시작한 지 4년 6개월 만입니다.
이번 재협상에서 한미 양국은 △한국산 승용차에 대한 관세(2.5%) 철폐 기간 연장 △자동차 관련 세이프가드(긴급 수입 제한조치) 마련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한국의 연비·배기가스 기준적용 완화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안전기준 적용 완화 등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였습니다. 이번 FTA 재협상 결과를 놓고 전문가들은 우리가 미국 측에 자동차를 중심으로 상당 부분 양보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07년 체결된 한미FTA 본문에는 미국 측이 FTA 발효 후 3,000 cc 이하 승용차는 2.5% 관세를 즉시 철폐하고 3,000 cc 초과 승용차에 대해서는 3년 내 2.5% 관세를 철폐하도록 돼 있었습니다. 또 2007년 당시에는 없었던 세이프가드를 받아들인 점도 기존 협상서 후퇴한 것으로 지적받고 있습니다.
이번 재협상에서는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철폐 기간을 연장해 5년에 걸쳐 2.5%씩 점진적으로 낮출 수 있도록 수정했습니다. 미국은 한국 자동차시장이 완전 개방되더라도 가격 경쟁력에서 여전히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한국산 자동차의 미국 진출을 견제할 수 있는 시간을 번 셈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현행 8%에서 4%로 낮추고 5년 안에 완전히 철폐하는 것으로 합의했습니다. 또 미국산 트럭에 대한 10% 관세는 즉시 철폐하되 한국산 수입 트럭에 대한 관세 25%를 8년 동안 유지하고 이후 1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철폐하는 것에 합의했습니다. 전기차에 대한 관세도 10%에서 4%로 즉각 낮추기로 했고 향후 5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폐지하기로 했습니다. 이로써 미국은 미국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픽업트럭 시장을 막아놓는데 성공했고, 전기차에 대해서도 향후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했습니다.
이번 재협상을 통해 미국은 관세인하와 환경 및 안전 기준 완화 효과 등을 얻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자국산 자동차 판매를 늘리는 동시에 내수 시장을 보호하는 효과를 동시에 거둔 셈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동차 업계는 어떨까요?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는 부품관세 인하로 대미 수출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부품관세 철폐는 미국에서 현지공장을 가동 중인 국내 자동차 업계의 수익성 강화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자동차 회사가 사라진 관세를 그냥 자신들의 이익으로 흡수해 자동차 판매량이 크게 증가하지 않아 부품 납품량도 그다지 늘어나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지만 작금의 시장상황을 놓고 보건대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근데 이번 FTA 재협상 결과에서 한 가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자동차 특별 세이프가드를 허용한 것입니다. 세이프가드는 사실상 미국이 휘두를 수 있는 칼자루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방을 표방하는 FTA를 체결하면서 무역의 장애요인인 세이프가드와 같은 견제 장치를 두었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입니다. 세이프가드는 미국이 언제든지 한국차 수입을 막을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자동차 업체의 미국 내 현지생산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문제 없다고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 넘길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미국은 자동차부문 세이프가드 신설을 통해 심리적 방어선을 구축하고, 더 나아가 자국의 고용창출까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반면, 이를 수용한 우리나라는 국내 자동차 산업의 공동화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번 재협상을 통해 미국은 자국의 약점을 보호하고 고용창출을 증대시키려는 뜻을 관철시켰습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협상단이 당초 내세웠던‘이익의 균형’부분에서는 크게 후퇴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국회 비준동의안 처리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지만, 소모적인 싸움보다는 큰 틀에서 한미 FTA 자체가 우리에게 더 많은 기회를 가져다 줄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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