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로그디바이스(Analog Devices, ADI)는 지난 10일, 1년여 간의 준비를 마치고 자사의 GMSL™(Gigabit Multimedia Serial Link) 기술 사양을 공개했다. 이와 함께 OpenGMSL을 중심으로 독립적인 이사회를 둔 비영리 기관 ‘OpenGMSL 협회(OpenGMSL Association, OGA)’의 출범을 알렸다. OpenGMSL은 ADI의 독점 GMSL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비디오 및 고속 데이터 전송을 위한 개방형 표준이다.
OpenGMSL 협회를 지원하기로 약속한 기업
OpenGMSL의 범위
ADI는 프로토콜 어댑터, 데이터 링크 계층, 물리계층을 포함한 주요 SerDes (Serializer/Deserializer) 인터페이스 기술을 로열티 없이(Royalty-free) 공개했다. 공개된 사양은 송신기(Serializer)와 수신기(Deserializer) 간 통신에서 공통으로 사용되는 블록들로, 특히 다양한 벤더 간 상호운용성을 위해 필수적인 HW 레지스터 추상화 계층과 설정 및 상태 교환 메커니즘(Config & Status)까지 포함한다. 이는 단순한 전송 물리계층(PHY) 수준을 넘어, 제품 간 호환성과 테스트 표준을 고려한 완성도 높은 구조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OpenGMSL 표준은 의무적인 적합성 테스트 인증 프로그램을 통해 기술 신뢰성과 품질 확보를 보장한다. ADI는 기술 공개를 통해 GMSL 기반의 생태계를 개방형으로 전환하고 자율주행, ADAS, 인포테인먼트 등 고속 비디오 전송이 요구되는 다양한 분야에서의 도입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기술 공개인가, 구조적 종속인가
GMSL은 ADI가 2007년경 처음 발표 이후, GMSL2를 거쳐 GMSL3로 진화하면서 대역폭과 기능이 계속해서 향상되었다. OpenGMSL 협회의 출범은 GMSL 기술의 표준화와 생태계 확장을 통해 채택을 촉진하려는 움직임이며, 동시에 차량용 고속 SerDes 시장에서 ADI 중심의 기술 주도권을 강화하려는 전략적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그간 GMSL 사양은 ADI가 단독으로 정의하고 관리해왔기 때문에, ADI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물리계층 및 프로토콜 문서 전체가 공개됐다고 해서 곧바로 중립적이고 개방적인 공개 표준(Open Standard)으로 여기기도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시뮬레이션 모델, 레퍼런스 디자인, 검증 환경 등을 제공한다는 소식은 없다. 그러나 향후 OpenGMSL 로드맵(Roadmap) 수립 과정에서 ADI의 영향력을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ADI 자동차 영상 데이터 솔루션(AVDS) 부문 부사장(VP) 겸 총괄 책임자(GM) 발라고팔 마얌푸라스(Balagopal Mayampurath)의 말이다.
“GMSL 로드맵과 OpenGMSL 로드맵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GMSL 로드맵은 지금까지 ADI가 자체적으로 개발해 온 기술을 포함합니다. 하지만 이제 ADI가 OpenGMSL의 일원이 되었기에, 차세대 GMSL 기술이나 기존 GMSL 기술의 어떤 진보도 OpenGMSL 협회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는 OpenGMSL 참여에 따른 변화된 접근 방식을 강조하면서도,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생태계 내 각 회사는 기본 GMSL 기술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제품을 개발할 수 있으며, ADI 역시 고유의 제품 로드맵을 가져갈 것이고 다른 회사들도 각자의 제품 로드맵을 가져갈 수 있다”면서 “핵심 GMSL 기술은 OpenGMSL 표준을 준수해야 하며, 이에 필요한 표준필수특허(Standard Essential Patents, SEP)는 회원사들에게 로열티 없이 제공될 것이다.”
MIPI A-PHY, ASA와의 차이
GMSL의 개방형 글로벌 표준 전략은 MIPI A-PHY 및 ASA(Automotive SerDes Alliance)와 비교된다. 이 표준들 역시 초기에는 특정 기업의 기술에서 출발했으나, 이후 다자간 표준화 절차를 통해 보다 중립적이고 개방적인 운영 구조로 발전했다.
예를 들어, MIPI A-PHY는 발렌스(Valens Semiconductor) 기술을 기반으로 하지만, MIPI 얼라이언스(MIPI Alliance) 산하 워킹그룹에서 다수 기업이 공동으로 사양을 수립하고 릴리스하고 있다. ASA 역시 마이크로칩 테크놀로지(Microchip Technology)가 인수한 VSI의 기술을 기반으로, 다수의 기업이 표준화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반면, GMSL은 이미 시장 지배력과 프라이어리티(Priority)가 있는 ADI의 독점 기술에 기반하고 있으며, 협회 역시 개방적 거버넌스 구조를 갖추었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따라서 표준화된 기술의 운영, 진화, 구현 과정에서 ADI의 영향력이 계속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기술 공개만으로 진정한 생태계의 다양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이 기술의 중심에 ADI가 존재하는 구조는 특정 벤더 종속성을 초래할 수 있다. 관건은 얼마나 많은 플레이어가 OpenGMSL 생태계에 합류하느냐이다.
그럼에도 GMSL은 이미 검증되고 상용화된 기술이라는 점에서 완성차 제조사(OEM) 및 1차 부품공급업체에게 기술적 안정성을 제공하고, 로열티 프리 정책은 진입 장벽을 낮추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산업 생태계로의 도약은 과제
이미 도로 검증을 완료한 기술을 더 많은 생태계 파트너와 공유하겠다는 OpenGMSL의 방향성 자체는 의미 있는 도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앞으로 OpenGMSL 협회가 단순한 기술 확산을 넘어서, 진정한 산업 혁신 플랫폼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ADI가 기술 통제권을 유연하게 개방하고, 다자간 협업과 거버넌스를 제도화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 될 것이다.
ADI에 따르면, OpenGMSL은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인(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RAND) 라이선스 조건 하에 운영되며, 상호운용성을 위한 인증 로드맵이 포함될 예정이다.
OpenGMSL 협회의 폴 페르난도(Paul Fernando) 회장은 보도자료에서, "GMSL은 지금까지 10억 개 이상의 IC가 출하되고 전 세계 25개 이상의 글로벌 OEM과 50개 이상의 1차 부품공급업체가 채택한,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성숙하고 실제 도로에서 검증된 고속 비디오 링크 기술 중 하나이다. OpenGMSL은 이러한 탄탄한 기반을 바탕으로 자율주행, ADAS,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분야에서 혁신을 가속화하며 이미 번성하고 있는 생태계를 개방적이고 협력적인 미래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GMSL 기술을 공개한 ADI가 OpenGMSL 협회는 물론, 경쟁 기술 생태계인 MIPI 얼라이언스와 ASA에도 모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ADI가 특정 기술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표준에 관여함으로써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려는 일종의 ‘보험’ 전략으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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