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기술 업체들은 늘 ‘새롭고’, ‘독특한’ 상황에 부딪히므로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현명하게 풀어나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실제로 첨단 기술 업체들은 넌더리가 날 정도로 끊임없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이 중 많은 어리석은 행동은 애초에 예방이 가능하다.
인텔 펜티엄 프로세서(CPU)가 네 자리를 넘기는 부동소수점 연산을 올바로 처리하지 못하는 바람에 5억 달러 이상을 날려버린 예가 있다. 인텔은 자사가 저지른 행동의 결과를 내다볼 방법이 정말로 없었을까? 인기 제품에 심각한 (적어도 심각하다 여겨지는) 결함이 생겨서 주요 브랜드를 손상시킬 경우 어떤 손실을 입을 지 정말로 몰랐을까? 당황하며 어쩔 줄 모르던 인텔에게 주력 제품인 마이크로프로세서의 결점을 은폐하고, 문제의 파급 효과를 인정하지 않고, 고객에게 전적으로 보상하지 않는 행동이 어리석은 선택이라는 사실을 알려줄 힌트가 전혀 없었을까?
전화위복
인텔은 1982년에 존슨&존슨 사의 예를 본보기로 삼았어야 했다. 바퀴벌레 퇴치용 청산염이 엑스트라 스트렝스 타이레놀 캡슐에 들어가는 바람에 일곱 명이나 사망한 사건 말이다. 이 독극물 사건은 아세트아페노민(아스피린에 사용하는 아세틸살리신산과 쌍벽을 이루는 해열진통제의 주성분) 시장에서 선두 브랜드이던 타이레놀 판매 기반을 즉각 붕괴시켰으며, 대다수 업계 전문가들은 타이레놀이 끝장났다고 보았다. 사건이 벌어진 직후, 뉴욕 타임즈는 “From Those Wonderful Folks Who Gave You Pearl Harbor (Simon & Schuster, 1970)” 등 광고와 마케팅 관련 서적을 다수 집필한 작가이자 광고전문가인 제리 델라 페미나의 말을 인용하여 “앞으로 타이레놀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제품을 팔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광고전문가가 있다면 바로 고용하겠다. 이런 친구라면 싸구려 냉장고를 와인 냉장고로 둔갑시켜 팔아치울 수 있을 테니.”라는 기사를 실었다.
하지만, 제리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고, 지난 24년 동안 그는 싸구려 포도주를 엄청나게 마셔댔으리라 짐작한다. 존슨&존슨 사는 기가 꺾여 움츠리는 대신 적극적인 PR 캠페인을 전개했다. 인텔 사태가 벌어졌던 1994년 즈음, 존슨&존슨이 전개했던 PR 캠페인은 회사 명성이나 브랜드가 타격을 입을 경우 이렇게 대응해야 한다는 본보기가 되었다. 캠페인은 다음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
1. 즉각적으로 언론 캠페인을 실시하여 일반 대중에게 캡슐에 독극물이 들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타이레놀 제품을 사용하지 않도록 경고했다. 회사 경영진은 문제 범위를 축소하거나 부정하지 말고 언론과 협조하여 현 상태를 널리 알리라고 지시받았다.
2. (1억 달러라는 손해를 감수하며) 시판 중이던 타이레놀 캡슐을 모두 회수했다.
3. 모든 타이레놀 캡슐을 타이레놀 정제로 즉시 교환해 주겠다고 공표했다.
4. 타이레놀 경영진은 여러 차례에 걸쳐 사건에 대한 충격과 사망자에 대한 조의를 솔직하게 피력했다.
5. 모든 제품을 회수한 후, 독극물 테러 방지형 포장으로 무장한 새로운 타이레놀 제품을 소개하고 쿠폰이나 할인가격으로 새 제품을 적극적으로 판촉하는 등 대대적인 PR 캠페인을 전개했다.
존슨&존슨이 취했던 조치와 인텔이 택했던 길을 비교해보기 바란다.
존슨&존슨의 뛰어난 (그래서 많이 연구된) 캠페인은 마케팅 수렁에서 제품을 건져냈다. 독극물 사태가 발생한 직후 타이레놀은 시장 점유율이 37%에서 0%로 떨어졌다. 하지만 몇 달 후에는 시장 점유율을 24%로 회복시켰으며, 오늘날까지 여전히 인기 있는 진통제로 선두 브랜드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타이레놀 교훈은 인텔이 따랐어야 할 길이다. 조금만 연구하고 조금만 역사를 돌아보고 조금만 상식을 발휘했더라면 인텔은 비웃음을 모면하고 5억 달러라는 돈도 건졌으리라. 왜냐하면, 놀랍게도 2세대 펜티엄 역시 수학 문제로 골치를 썩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텔은 5억 달러 가치의 교훈을 얻었다. 회사는 즉시 ‘결함 있는’ 프로세서를 회수하고, 불만 있는 고객에게는 새 칩으로 교환해 주겠다고 발표했다. 사실 FPU(부동소수점 유닛)이 무엇인지 모르는 고객이 부지기수였으며 정밀한 long 나눗셈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고객은 더 많았으니, (인텔이 ‘보증 백지 수표’라는 보험 증서를 내밀자) 일반 대중은 컴퓨터 사용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한 잠자코 있는 쪽을 택했다. 아무도 사건 내막에 신경쓰지 않았다. 일부 골수 하드웨어 전문가나 까다로운 수학자들은 새 칩으로 교환받고 만족스럽게 집으로 돌아갔다.
어디든 존재하는 교훈
솔직히 말하자면, 과거 실수로부터 교훈을 배우지 않으려는 태도로 난관을 자초한 분야는 첨단 기술 업계만이 아니다. 잠시 첨단 기술 분야에서 벗어나 미국에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인 자동차 업계로 눈을 돌려보자.
1970년대 미국 자동차 업계는 조잡하고 엉성한 조립품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1970년대 말 크라이슬러 사가 내놓았던 코도바라는 엉터리 차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데, 크라이슬러 대변인이던 리카도 몬탈반(스타트랙 시리즈에서 칸 역을 맡은 이 배우는 코드바 광고에서 맹활약을 했다. 코도바 TV 광고는 http://www.youtube.com/watch?v=QqhZdaVMVn0에서 직접 확인하기 바란다)은 차내를 ‘고급 코린트 가죽’으로 장식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확실히 고급 가죽은 곧장 녹슬어버리는 차체보다 오래갔다. 이 시절 크라이슬러 자동차에 비길만한 차로는 전시장을 빠져나오는 순간 산화철 입자로 부스러지기 시작하는 셰비 베가가 있었다.
포드 핀토를 견제하기 위해 제너럴모터스(GM)가 만든 셰비 베가는 엔진 과열과 동체 부식 문제로 인해 비판을 받았다. 시제품의 첫 도로 테스트에서 8마일 주행 후에 글자 그대로 동체가 조각조각 분해되었을 정도로 설계 시점부터 문제가 많은 모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 정도로도 스릴을 못 느끼겠다면 ‘저승사자’ 포드 핀토도 있었다. 포드 핀토는 가스탱크를 뒷 차축 위에 장착하는 바람에 강한 충격을 받으면 어김없이 폭발하는 놀라운 차였다.
핀토는 폭스바겐 소형차와 경쟁하기 위해 포드가 개발한 소형차로 개발 과정에서 후방 충돌 시 연료 탱크가 터진다는 사실을 알고도 개발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그대로 개발을 진행하는 바람에 소송에 휘말렸다. 결국 충돌 시 화재로 인한 수많은 희생자를 내었기에 크고 작은 소송과 차량 150만 대를 리콜하는 진통을 겪은 끝에 핀토 모델은 단종되고 말았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전세가 역전되었다. 포드, GM, 크라이슬러 3사가 모두 중대한 품질 향상을 이뤄낸 듯 보였다. 비록, 어떤 미국차도 일본 자동차 업계가 달성한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상황은 틀림없이 나아지고 있었다. 6만 마일을 넘어서면 한 줌의 산화철 입자로 부스러져 버리던 불운한 코도바와 달리, 이제는 미국차도 꽤나 튼튼하게 나와서 사람들은 자국산 깡통으로부터 10만 마일이라는 주행거리를 기대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자기 차에서 ‘생활하기’를 좋아한다는 일본 자동차 업계의 연구결과에 편승하여, 미국차 역시 컵 홀더와 수납용 공간을 늘이고 차 내부를 화려하게 장식하면서 일본차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특히, 크라이슬러는 이 방면에 매우 열과 성을 다해 일부 운전자들은 크라이슬러 미니밴과 세단을 슬러피모빌(Slurpeemobiles)이라 부르기도 했다. 슬러피는 미국에서 세븐일레븐이 공급하는 탄산음료 이름이다. 슬러피모빌은 슬러피와 모빌의 조어로 컵 홀더에 탄산음료 용기를 꽂아두고 다닐 수 있는 차량이라는 별명이다.
또한 튼튼함으로 말하자면, 닷지 애리즈와 플리머스 릴라이언트와 같은 K 차량은 결코 최첨단 자동차가 아니었지만, 초기 모델이 나온 지 20여년이 지난 후에도 뉴욕, 뉴잉글랜드, 동부 캐나다의 얼어붙고 염화칼슘에 의해 부식을 일으키는 거리를 여전히 느릿느릿 기어 다닌다(동부 캐나다에서는 일명 토론토 택시라고도 한다).
1980년대를 풍미한 닷지 애리즈와 플리머스 릴라이언트는 크라이슬러에서 기획한 K 차량 플랫폼을 공유하는 쌍둥이 모델이다. K 차량 플랫폼은 크라이슬러를 파산에서 구해낸 리 아이아코카 회장의 아이디어라고 알려져 있으며 일본차와 경쟁하기 위해 콤팩트한 자체와 고효율 엔진을 도입했다.
품질을 중시하는 문화는 미국 자동차 업계 전반으로 퍼져 나갔다. 포드 사는 품질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당시 80대 노인이나 좋아할 60년대 디자인을 70년대 K 자동차에 덧씌운 싸구려 크라이슬러 임페리얼을 복원하겠다고 밀어붙이던) 나름대로 이 바닥에서 전설적인 리 아이아코카는 “더 잘 만든 차가 있으면 그 차를 사십시오”라고 장담했다. 이에 뒤질세라 GM은 새턴이라는 새 사업부를 신설하고는 ‘테네시 주 산간벽지에 사무실을 차리고 직원들을 몰아넣은 후 다른 소일거리를 안주면 힘은 부치지만 1980년대 일본 차 정도로 튼튼한 소형차를 만들 수 있음’을 증명했다.
품질과 내구성에 쏟아 부은 노력은 효과를 거두었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차는 일본차 판매량에 뒤지지 않았고 유럽차 판매량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미국 자동차 업계는 퇴보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도요타 캠리와 혼다 어코드는 별다른 잔 고장 없이 15만, 심지어 20만 마일은 거뜬히 달린다. 게다가 디자인도 세련되고 연비도 우수하고 엔진도 더 강력하다.
일본차 차체는 차문과 동체 패널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반면, 셰비와 폰티악은 깊이도 제대로 재지 못하고 공간 감각도 없는 조립공이 대충대충 붙여놓은 듯하다. 유럽차는 내부 플라스틱 마감이 부드럽고 기품 있지만, 미국차는 종종 1970년대에 재고로 남겨둔 재활용 폴리에스터 편물 소재로 만든 듯하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폰티악 그랜드 암과 폰티악 본네빌레를 탔다. 하지만 둘 다 65,000마일을 넘기지 못하고 심각한 전장 부품 결함이 발생했다. (설상가상으로 1999년산 폰티악 본네빌레는 69.000마일을 넘어선 후 2주에 걸쳐 자동차에서 고철덩어리로 전락했다. 에어컨이 죽었고 엔진의 플라스틱(!) 흡기 매니폴드는 균열이 갔고 자동차 엔진룸 내부가 부동액으로 물바다가 돼버렸다. 반면에 현대 엘란트라 왜건은 130.000마일에 폐차시키기 전까지 전장 부품과 기계 부품이 모두 제대로 동작했다.
혼다 어코드에 장착된 하이 빔 스틱은 만족스러운 ‘딸깍’ 소리와 함께 가볍게 튀기는 맛이 있었다. 반면, 폰티악 본네빌레의 조명 제어 막대는 생기 없는 감초뿌리를 잡아당기는 느낌이었다. 포드 포커스, 링컨 LS, 폰티악 아즈텍, 크라이슬러 300m 등등 대다수 미국차는 초기 모델에서 온갖 품질 문제를 일으켰다.
객관적인 자동차 평가로 유명한 컨슈머 리포트는 항상 일본차에게 (최고라는) 붉은 점을, 미국차에게 (바닥이라는) 검은 점을 주었다. 일본차의 등장으로 새롭게 드러난 현실, 즉 고객은 튼튼하고 잘 만든 차를 선호한다는 현실을 따라잡고 만회할 기회가 지난 30여년 동안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차는 여전히 바닥을 면치 못했다.
미국 자동차 업계의 품질, 내구성, 디자인 문제는 너무나 심각하여 2006년 무렵 GM과 포드 사 채권은 정크 본드(Junk bond)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두 회사는 시장 점유율을 퍼주고 공장을 닫고 종업원을 감축했다. 포드 사 후계자 윌리엄 포드는 (아마 놀랍도록 부실한 포드 포커스를 내놓고도 해고되지 않아서) 활짝 웃는 노동자가 (다시한번) 안전하고 튼튼한 차를 내놓겠다고 약속하는, 20여년 전과 너무나도 똑같은 광고를 내놓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일부 자동차 업계 관련자들은 미국차 품질이 나아지지 않는 이유로, 디트로이트가 수익률을 높이고 시장우위를 점하려고 큰 SUV에 치중했기 때문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 이론의 문제점이라면, 미국 자동차 업계가 6만 마일 정도만에 차체 앞부분이 삐걱거리는 GMC 지미와 평범하게 몰아도 차체 외장이 날아가 버리는 포드 익스페디션 에디 바우어 에디션을 쏟아낸 반면, 일본 자동차 업계는 지구온난화와 만년설 용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컨슈머 리포트가 판결했듯이) 아주 안전하고 잘 만들어진 괴물(?)임을 입증해보였다.
미국 자동차 업계가 품질과 내구성 측면에서 최소한 비슷하게라도 일본차를 따라잡지 못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경영진과 노동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과거 실수를 연구해서 (뒷북을 쳐서) 같은 실수를 피하지 못한 그릇된 판단을 탓할 밖에.
과거의 실수를 분석하라
첨단 기술 업계 전문가들이 흔히 뒷북치기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몇 가지 이론은 있다. 하나는 문화 탓이다. 특히 1970년대 후반부터 첨단 기술의 근간과 원동력이 되어온 실리콘벨리 문화가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캘리포니아 주에 위치한 실리콘벨리는 자아실현과 자아도취의 땅이자, 저주받은 인류의 가장 어리석은 문화 중 일부가 탄생한 곳이다. est(est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면 http://en.wikipedia.org/wiki/Erhard_Seminars_Training을 읽어보기 바란다.)만해도 그렇다. 전직 중고차 판매원 ‘베르너 에르하트(Werner Erhardt)’(실명이 아니지만 상관없다)가 고안한 “What is, is”라는 상투어를 둘러싼 개념이다. 이 개념은 “it”을 얻어서 “is”에 도달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아주 수익성 높은 세미나 프로그램으로 변형되었다.
참석자들이 토마토 사이를 통과하고, 강사가 참석자들에게 무례한 말을 외치고, 신참들에게 대다수 사회관습을 무시하라고 가르치고, (틈만 나면) est 세미나 동안에 화장실에 가는 사람을 막는 등 일련의 훈련으로 유명한 세미나다. est 신뢰 시스템은 “당신의 믿음, 당신의 감정, 당신의 경험만이 진정으로 중요하다.”라는 주문을 중심축으로 삼는다.
짐작하겠지만, est는 경쟁자가 있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프로 사 고위급 간부 중 많은 수가 “웃는 친구들(The Laughing Men)”이라는 뭔가를 “졸업”했다. 당시 내가 들은 바로 “웃는 친구들”은 est에서 갈라져 나온 분파로 est와 거의 똑같았다. (나는 사람들이 웃는 이유가 화장실에 가도 된다고 허락받아서라고 짐작했다)
애시톤태이트 사는 사이언톨로지(미국 SF 작가인 론 허바드가 1950년대 설립한 교단으로 이-메터라는 특수한 기계를 통한 일대일 대화 기법(오디팅)으로 인간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 영화배우인 톰 크루즈가 사이언톨로지에 심취해있다고 해서 더욱 유명해졌다)가 상당히 널리 퍼져 있었으며, 회사 창립자인 조지 태이트는 사이언톨로지 실천가였다.
est와 est 아류작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에 크게 유행했으며, 반사회적 이상성격자를 대규모로 양산했다. 이들은 잘못을 저지른 후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행위처럼 대인 관계에서 기본적인 의무는 아예 무시하며, 모든 변덕과 욕망을 마지막 한방울까지 충족시키는 데만 집중했다. (막상 생각해보니, 오늘날 첨단 기술 업체의 고위 간부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부 est 졸업생은 (이혼 서류를 받아들거나 한 대 얻어맞은 다음에야) 제정신을 차렸고, 베르너 에르하트는 어느 날 완전히 망해서 유럽으로 이주해버렸다.
하지만 작금의 풍토를 살펴보면, 자신의 경험에만 의존해서 “자신의 현실을 창조한다”는 est의 자기중심적 유아(唯我) 사상이 첨단 기술 업계에 (다른 업계에도) 뿌리를 깊이 내린 듯하다. 그러니 이미 모두가 믿는 사상을 가르쳐서 돈을 벌기가 어려웠으리라. 사람들은 자기 현실에만 매달리느라 남의 현실, 특히 실패한 현실은 돌아보지 못하게 되었다. 내 현실에는 다른 사람의 실패까지 고려할 여지가 없으니까.
또 다른 이론은 공학도와 프로그래머의 본성에 초점을 맞춘다. 공학도와 프로그래머는 계속해서 새롭고 혁신적인 회사를 만들고, 이렇게 만든 회사는 과거 아둔함을 반복하면서 망한다. 최고 프로그래머와 최고 공학도는 대부분 ‘세상을 창조하는 사람’이며, 일에 ‘파묻혀’ 살아가며 제품 개발에 사용하는 도구, 기법, 기술을 완벽하게 통제할 때 최고로 행복하다. 흔히 언급되는 NIH(Not Invented Here) 신드롬은 이런 본성의 직접적인 결과이며, NIH가 지니는 파괴력은 핵심 프로그래밍 그룹이 제품 통제권을 다투다 마침내 회사를 무너뜨리는 마이크로프로 사 이야기에서 잘 드러난다.
NIH에 뒤따르는 태도는 DTMNBICTCAYD(Don’t tell me nothing, because I created this company and you didn’t, 이 회사는 내 회사이지 자네 회사가 아니니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게)이다. 이런 태도 역시 역사를 반복하게 만드는 불행의 원인이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런 신드롬으로 재난을 자초하는 회사는 첨단 기술 업계에 그치지 않는다. 1908년 헨리 포드가 만든 모델 T는 포드 사를 미국 대표 자동차 기업으로 부상시켰을 뿐만 아니라 향후 20여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자동차 업체로 만들었다. 당시 기준으로 보면 모델 T는 최첨단 기술을 도입했고 튼튼했으며 유지보수가 쉬웠고 신뢰성이 높고 가격이 저렴했다. 하지만 자동차 업계는 급격하게 변했다. 1912년 포드가 여행을 다녀온 사이에 포드 사 엔지니어 몇몇이 새로운 모델 T 시제품을 만들어놓았다. 시제품은 좀더 부드러운 승차감과 안정감 있는 축거 등 기존 제품을 개선한 ‘판올림’ 버전이었다. 하지만 자신으로부터 직접적인 통제를 받지 않고 ‘자기’ 자동차를 개선하려는 시도에 답하여 포드는 시제품을 두들겨 부셔버려 그 자리에 있던 엔지니어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사실은 과거 실패로부터 교훈을 배우려고 애쓰는 업계도 있다. 항공 업계가 가장 좋은 예이다. 항공기 추락이나 심각한 비행사고가 발생한 후에 정상적인 NTSB(The National Transportation Safety Board,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 조사관이라면 결코 다음과 같은 상황을 연출하지 않는다.
NTSB 조사관: “이런, 기장님, 저기 보이는 산으로 비행기를 운항해서 승객을 모두 죽였군요.”
비행기 기장: “맞습니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조사관님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비극적인 항공사고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제가 직접 겪어야만 했습니다. 참사를 겪어보니, 비행기를 추락시켜 승객을 죽이는 사고가 얼마나 끔찍한 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깨달았으며, 애초에 이런 사태를 피해야만 하는 이유를 피부로 느낍니다.
이렇게 넘어가는 대신, 항공기 승무원이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거나 항공기가 추락한 사고 후에는 상황을 분석하고 부분 부분으로 쪼개서 비행 시뮬레이터에 입력한다. 비행 시뮬레이터는 뒷북치기로 가득 찬 전자 기기라고 하겠다. 입력이 끝나면 전세계에 흩어진 비행 승무원을 주기적으로 불러들여 시뮬레이터 수업에 참석시킨 후 교관이 만족할 때까지 가르친다. 뒷북을 치면서 교훈을 배워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말이다.
설교는 이 정도로 충분하겠다. 당신이 자기장단에만 발맞추는 고집스러운 유형이라면, 그러니까 심술궂게 남을 의심할 때만 오로지 삶의 재미를 느끼는 성격이거나, 재앙이라는 채찍과 재정 파탄이라는 매질에 겁쟁이로 살지 않기 위해서 모든 감정을 몸소 경험할 작정이라면 경의를 표하고 행운과 성공을 기원한다.
코드바
일반 자동차 가격에 고급 자동차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호사스러운 이름과 느낌이 들도록 노력한 모델이다.
셰비 베가
GM이 포드 핀토를 견제하기 위해 만들었다. 엔진 과열과 동체 부식 문제로 인해 비판을 받았다. 시제품 첫 도로 테스트에서 8마일 주행 후에 글자 그대로 동체가 조각조각 분해되었을 정도로 설계 시점부터 문제가 많은 모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핀토
폭스바겐 소형차와 경쟁하기 위해 포드가 개발한 소형차로 개발 과정에서 후방 충돌 시 연료 탱크가 터진다는 사실을 알고도 개발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그대로 개발을 진행하는 바람에 소송에 휘말렸다. 결국 충돌 시 화재로 인한 수많은 희생자를 내었기에 크고 작은 소송과 차량 150만 대를 리콜하는 진통을 겪은 끝에 핀토 모델은 단종되고 만다.
K 차량
1980년대를 풍미한 닷지 애리즈와 플리머스 릴라이언트는 크라이슬러 사에서 기획한 K 차량 플랫폼을 공유하는 쌍둥이 모델이다. K 차량 플랫폼은 크라이슬러를 파산에서 구해낸 리 아이아코카 회장의 아이디어라고 알려져 있으며, 일본차와 경쟁하기 위해 콤팩트한 자체와 고효율 엔진(초기에는 일본 미쓰비시에서 만든 엔진을 K 차량에 탑재했었다)을 도입했다.
도요타 캠리
토요타 캠리는 1980년에 첫 선을 보인 이후, 개량에 개량을 거듭해온 중형차이다. 1997년부터 계속해서 미국 내 베스트셀러 자동차로 자리잡고 있다.
혼다 어코드
혼다 어코드는 1976년에 첫 선을 보인 직후, 7세대 모델까지 발전해온 중형차이다. 역시 도요타 캠리와 마찬가지로 미국 내에서 베스트셀러 자동차로 자리잡고 있다.
폰티악 그랜드 암
GM 사가 개발한 모델로 처음에는 중형차로 나왔지만 나중에는 콤팩트 차로 개념이 바뀌었다.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2006년 단종되었다.
폰티악 본네빌레
GM 사가 개발한 모델로 대형 세단이다. 흡기 매니폴더 균열을 비롯한 크고 작은 문제점으로 시달린 모델이다.
포드 포커스
2000년에 처음 등장한 포드 사가 만든 콤팩트 차량이다. 초기 문제점을 극복해서 2002년부터 미국 내에서는 한번도 리콜된 적이 없는 안정적인 모델로 컨슈머 리포트가 소형 차량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링컨 LS
1999년에 포드 사가 만든 중형 중고급 세단형 모델로 2006년도까지 만들어졌다.
폰티악 아즈텍
1999년에 GM 사가 만든 중형 SUV 모델로 2005년도까지 만들어졌다.
크라이슬러 300m
1999년에 다이믈러 크라이슬러 사가 기존 300 모델 이름을 바꿔 내놓은 모델이다. 6기통 엔진을 탑재한 고급 세단으로 크라이슬러 K 플랫폼에 이어 등장한 LH 플랫폼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GMC 지미
시보레 K5 블레이즈라고도 불리는 이 차는 제너랄 모터스가 만든 C/K 트럭 패밀리 중에 가장 작은 동체를 갖춘 SUV이다.
바우어 에디션
포드가 만든 대형 SUV로서 1997년에 처음 등장했다. 에디 바우어 에디션은 미국 의류 업체인 에디 바우어와 포드가 파트너십을 맺어 만든 공동 브랜드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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