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산업에서 전자기술을 더 이상 떼놓고 생각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자동차의 제조단가에서 전자부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현재 20∼30%에 이르고 있으며 2015년에는 약 40%로 높아질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자동차의 쾌적성, 안전성, 친환경성, 신뢰성 등은 전자기술을 통해 실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안전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반도체 센서에 의한 화상 데이터와 교통 인프라 시스템과의 통신을 통해 얻은 정보를 기초로 마이크로컨트롤러로 엔진과 브레이크를 제어하는 충돌예방 시스템(Pre-Crash Safety System)의 실용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강화되는 각국의 환경규제에 따른 대책의 하나로 개발되고 있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비롯해 전기자동차나 수소연료 자동차의 경우 모터와 배터리 등이 핵심 부품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동차의 기본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전자기술의 역할이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으며 자동차 제조단가의 절반 가까이를 전자부품이 차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자동차의 핵심 기능을 전자기술이나 전자부품이 차지하게 됨에 따라, 자동차산업 자체도 전자산업의 영향권 아래 놓이게 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습니다. 실제로 컴퓨터와 통신, 가전 업계는 전자기술의 핵심을 이루는 반도체업계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동차업계도 머지않아 반도체업계로부터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전자기술의 핵심을 이루는 반도체는 몇 십 년에 걸쳐 지속적인 성능향상과 가격삭감을 이루어왔습니다. 소위 ‘스케일링 법칙’이라고 하여 반도체의 성능은 18개월마다 두 배씩 증가해 왔고 가격은 절반씩 삭감되었습니다. 성능향상과 가격삭감 중 어느 쪽을 선택할 지는 반도체 설계자 혹은 이용자의 몫이었습니다. 어쨌든 놀라운 것은 스케일링 법칙이 거의 40년 가까이 지켜져 왔다는 사실입니다. 코스트 퍼포먼스는 실제로 100만배이상 향상되었습니다. 물론, 자동차를 포함한 반도체 이외의 업계에서도 계속적인 성능향상과 가격삭감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반도체업계와 같은 유래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반도체의 미세화 추세는 반도체 기술에 크게 의존하는 컴퓨터, 통신, 가전 업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긍정적인 면에서는 전 세대 제품에 비해 2배이상의 코스트 퍼포먼스를 제공하는 차세대 제품을 시장에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체 수요의 창출은 물론 높은 코스트 퍼포먼스를 살려 새로운 응용분야를 개척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해당 시장을 빠르고 연속적으로 확대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제품의 라이프사이클도 짧아져 어떤 세대에 시장을 석권한 제품이나 기업이라도 후속 제품의 개발에 실패하면 곧바로 도태되는 냉엄한 현실과 부딪쳐야 합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하여 시장지배자조차도 1년이나 6개월의 짧은 기간 신제품 투입을 할 수밖에 없어 단기간의 개발에 따른 회사 리소스 부족을 보충하는 수평분업형의 산업구조로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형적인 예로서 메인프레임으로부터 시작하여 워크스테이션, 퍼스널컴퓨터로 이어진 컴퓨터업계의 변혁과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시장지배 기업은 수직통합형의 IBM에서 썬마이크로시스템즈, HP 등을 거쳐 수평분업형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시장지배 기업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썬은 후지쯔와,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텔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세화 추세의 영향을 받은 예로서는 디지털카메라의 화소수 확대 경쟁, 휴대전화의 고성능화 경쟁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촬상소자와 화상처리 칩을 둘러싼 디지털카메라 업체와 반도체업체의 협력관계,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둘러싼 휴대전화업체와 반도체업체의 협력관계가 업계의 세력판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자동차의 기능이나 성능, 가격이 반도체로 대표되는 전자기술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면, 자동차산업도 반도체의 미세화 추세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 컴퓨터, 통신, 가전 업계와 마찬가지로 코스트 퍼포먼스의 개선에 의해 시장은 급속히 확대되겠지만 제품가격의 계속적인 하락, 경쟁심화, 기술혁신 여부에 따른 점유율 급변이나 수평분업형의 산업구조로의 전환 등을 요구받게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한 유력한 대항 수단의 하나가 자동차업체와 전자업체의 긴밀한 상생협력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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