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 몰락과 전기자동차
2009년 08월호 지면기사  / 편집고문

이제까지 ‘최선’이라고 여겨왔던 GM 방식에 ‘유죄’ 판결이 났습니다. GM 파산은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석유의존 사회의 종언’을 상징합니다. GM은 석유에 의존한 자동차 왕국을 이룩한 패자였기 때문입니다.
1885년 독일에서 고트리브 다임러에 의해 처음 발명된 가솔린 엔진 자동차는 미국으로 건너가 대중화 시대를 열게 됩니다. 포드자동차(Ford Motor)의 설립자이자 ‘자동차 왕’이라는 닉네임으로 잘 알려진 헨리 포드가 자동차의 대중화 시대를 연 장본인입니다. 헨리 포드는 미국의 일반 노동자도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는 값싼 자동차를 만들었습니다. 자동차 값에 구애받지 않는 상류계층을 위한 자동차를 만든 유럽과는 상반된 길을 걸었습니다. 포드는 단순화와 규격화에 의한 대량생산 방식으로 대중 자동차 시장을 창출합니다. ‘T형 포드’는 미국에서 세계 최초의 모터라이제이션을 실현한 자동차 모델입니다.
GM은 포드자동차가 T형 포드를 발표한 1908년에 설립되었습니다. 1923년 피엘 듀폰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GM 사장에 취임한 알프레드 슬론은 GM 중흥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1920년대 접어들면서 미국 자동차 시장은 소득의 여유가 생긴 소비자계층이 형성되고 T형 포드 대신 가격대가 약간 높은 자동차 수요가 일기 시작합니다. 당시 마켓에 대한 천재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있던 슬론은 자동차 시장이 대체 수요와 외형이 강조되는 시대가 열릴 것임을 간파합니다. 마침내 슬론은 모델 체인지, 광고, 크레딧을 결합한 마케팅 기법으로 자동차를 패션 상품으로 탈바꿈 시키는데 성공합니다. 그는 대체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서 캐딜락에서 시보레까지 가격대가 다른 6개 차종을 생산, 매년 디자인을 바꾸는 모델 체인지와 광고로 소비 수요를 만들어 내고 자동차 론과 크레딧으로 고액의 브랜드 차를 언제든지 살 수 있게 했습니다. 반면, 포드는 오랫동안 T형 포드 한 차종만을 고집스레 생산했습니다. ‘교체하지 않고 오래 타는 견고하고 실용적인 차’라는 마인드에 충실한 나머지 마케팅엔 눈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또 크레딧을 도입하지 않은 점도 포드를 열세로 몰아간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결국 1927년 슬론 회장이 이끈 GM이 포드를 앞지르게 됩니다. T형 포드는 GM에 패퇴하고 생산 중단 상황까지 몰리게 됩니다. 이것은 대량생산과 코스트다운 전략에 도전한 모델 체인지라고 하는 마케팅 전략의 승리였습니다. 이후 GM은 82년간 자동차 왕국의 패자로 군림하게 됩니다.
모델 체인지를 통해 소비를 창출한다는 스론의 마케팅 전략은 모든 산업에 급속히 확산됩니다. 모델 체인지로 소비를 창출함으로써 대량생산에 걸맞는 대량소비가 가능해졌습니다. 이를 계기로 GM은 대량소비 사회의 프런티어로 불리게 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대량소비 사회를 가능하게 한 원천은 석유입니다. 석유가 싼 가격에 대량으로 공급될 수 있었기 때문에 대량소비 사회도 가능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석유 자원도 무한하지 않습니다. 73년과 79년에 각각 발생했던 1,2차 오일쇼크의 공포를 기억합니다. 근년에는 유가가 연일 최고가를 갈아치우는 초유의 상황도 경험했습니다. 이제 소비자들은 유한한 석유자원의 공급과 가격 요동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결과 모델 체인지를 되풀이하고 화려한 디자인과 배기량으로 겨뤄 온 자동차는 ‘석유 먹는 하마’로, 자원 낭비형 제품의 대명사로 외면 받게 되었습니다.
시대는 석유의존 사회에서 저탄소사회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자동차도 현실을 쫓아 석유를 에너지원으로 하는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석유를 직접 태우지 않는 전기자동차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경영 재건중인 GM도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전기자동차를 개발할 것을 강하게 요구받고 있습니다. 가솔린 자동차로 20세기에 가장 성공한 GM의 파산은 결국 석유의존 사회의 종언과 저탄소사회로의 전환, 그리고 전기자동차의 대중화를 앞당기는 기폭제가 될 것입니다.



<저작권자 © AEM.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 100자평 쓰기
  • 로그인


  • 세미나/교육/전시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