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현대ㆍ기아자동차 정몽구 회장이 “미래 차에 중요한 전장부문 발전이 왜 이렇게 더디냐”며 “덴소와 같은 회사를 만들라”고 주문했다. 덴소는 미래의 차가 요구하는 첨단 올인원 시스템을 OEM에 제공하기 위해 반도체, 센서, 소프트웨어, 제어기술까지 자체 해결하는 기술의 수직 통합을 이뤘다.
덴소(Denso)를 한자로 쓰면 전장(電裝)이다. 덴소하면 떠오르는 것이 첨단 안전기술, 환경기술, 지능형교통시스템(ITS) 등의 미래 기술들이다. 덴소 스스로는 환율에 의한 승리라며 평가 절하하지만 매출 규모에서 보쉬를 누르고 세계 1위에도 올랐었다. 덴소는 미래 기술을 선도해 선진 자동차시장에 이바지하는 서플라이어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수직 통합
테베스, 테믹, 푀닉스, 모토로라 오토모티브 일렉트로닉스, 지멘스 VDO를 차례로 인수해 올인원 시스템 제공을 위한 수직 통합(vertical integration)을 완수한 콘티넨탈처럼 덴소는 오래 전부터 차량용 반도체, 센서, 소재, 소프트웨어, 제어기술, 제조, 시스템 등 모두를 자체 해결할 수 있는 수직 통합을 완수한 하이테크 기업이다. ‘인수’가 아닌 스스로 해냈음을 강조하지만, 어쨌든 덴소는 자사 제품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이것들을 연계시킴으로써 원자재에서부터 제조 프로세스, 최종제품까지 기술과 비용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덴소는 자동차 전장의 핵심인 반도체와 관련 1968년 IC연구소를 설립했고, 2년 후 공장을 세웠다. 이미 1950년에 전기차를 생산, 판매한 경험이 있다. 1970년 대에 하이브리드 카 등 차세대 차량 개발에 나섰고 1997년부터 토요타 프리어스의 인버터, DC/DC 컨버터, 전동 에어컨 등의 제품을 양산하고 있다. 안전 부문에서는 1989년부터 전 세계 카 메이커들을 대상으로 반도체 센서 및 에어백 센싱 시스템을, 1997년부터 적응형 순항제어 시스템용 ECU와 레이저 레이더를, 2003년부터 세계 최초로 사전 충돌방지 시스템(Pre-Crash Safety)용 ECU와 밀리미터파 레이더를 개발·공급하고 있다. 현재는 ‘졸음방지 기술’을 비롯한 첨단 운전자 모니터링 기술, 차세대 텔레매틱스 시스템, V2X 기술의 고도화에 나서고 있다.
수직 통합의 이점이란 무엇인가. 예를 들어, 하이브리드 카의 파워 컨트롤 유닛(PCU)에 사용되는 핵심 장치 “파워 카드” 개발에서 덴소는 PCU를 구성하는 파워 반도체의 열 방출을 양면에서 할 수 있도록 해 온도 상승 억제를 통해 기존 대비 2배의 전력 공급을 가능케 했다. IGBT 소자를 구리 리드 프레임에 땜납으로 접합하고 수냉 방식으로 냉각한다.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자체 보유한 재료기술과 가공기술을 통해 완성했다. 단면보다 양면 냉각이 좋고, 칩 크기를 줄일 수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를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덴소가 웨이퍼 공정, 회로 설계, 구현 등 개별 반도체 기술뿐만 아니라, 시스템 개발에서 가공기술까지 모든 프로세스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른 사업부의 노하우를 융합할 수 있다는 것은 이처럼 큰 장점이 된다. 부서를 초월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이것들을 서로 검토함으로써 최상의 성능을 이끌어낸다.
총력과 범용부품
덴소의 근원은 높은 생산기술과 이 생산기술을 받쳐주는 인재에 의한 기술에 있다. 여기에 수직 통합 환경은 엔지니어가 하고 싶은 것을 실현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수직 통합은 개발자들의 창의력, 기술력을 향상시킨다.
예를 들어, 1995년 세계 최초 실용화에 성공한 디젤 커먼레일 시스템 ECD-U2의 개발은 1985년 유럽의 한 라틴계 기술자의 ‘연료를 고압 상태로 모아두고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분사한다’는 발상에 힌트를 얻은 미야키 마사히코(Miyaki Masahiko, 現 전무)와 한 명의 신입사원이 10여년의 연구 끝에 이룬 결과다. 개발자가 아이디어를 내고, 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표한다면 회사는 이를 적극 지원하며 수직 통합의 환경이 기술의 실현과 향상에 기여한다. ‘총력’이 동원되는 것이다. 커먼레일 시스템 개발에서 총력이란 제조설계, 기초개발, 좋은 철과 코팅 등 재료기술, 정밀가공기술, 해석기술, 계측기술 그리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고도의 전자제어 기술을 말한다.
반도체로 보면, 새로운 소자를 만들어 고객에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사내의 부품에도 내장시킬 수 있으며 새 IC가 자동차의 주행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등에 대해 즉각적으로 실험할 수 있다. 단순히 고객의 요구사양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내의 각 부서 엔지니어와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하면 더욱 개선된다”식의 요구사양을 반영해 기술력을 더 높일 수 있다.
전력/전자 부문에서 덴소는 IGBT 및 MOSFET 프로세스의 연구, 개발, 제조를 모두자체 해결하고 있다. 많은 비용이 수반되지만 대형 반도체 제조업체에 뒤지지 않는 제조공정을 갖추고 있다. 물론 자체 프로세스에서 개발하지 않은 소자는 외부에서 조달한다. 반도체를 자체적으로 만든다는 것은 외부에 대한 “감정”을 좀 더 면밀히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제품의 품질을 보기 위해 공급업체의 제조공장을 보지 않을 수 없는데, 해당 기업의 안정적 공급이 가능한지, 가격은 합리적인지 등에 대해 스스로 면밀히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은 능력은 외부 조달품의 품질 상승으로 이어진다.
덴소는 독일 최대 자동차 부품회사인 보쉬, 2007년 지멘스 VDO를 합병한 콘티넨탈과 더불어 세계 3대 자동차 서플라이어의 지위에 올라있다. 독일의 선진 서플라이어들처럼 덴소 역시 특정 자동차 회사에 종속돼 있지 않다. 설립 초기 토요타 산하에서 토요타를 위한 부품을 생산했지만 현재는 전 세계 모든 카 메이커들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다.
수직 통합 환경에서 협력에 의해 완성된 기술은 모듈화 되고 범용부품으로 대량 생산되며 외부로 판매된다. 반도체 센서는 그 전형적인 예 중 하나다. 덴소는 차량용 반도체 센서를 1981년부터 양산했다. 당시에는 각 차종에 대한 맞춤형 제품이었지만 현재는 완전히 범용부품화 됐다. 카 메이커는 반도체 센서를 개발할 필요 없이 시장에서 조달하면 되지만, 서플라이어인 덴소 입장에서는 직접 개발해 시장에서 우위를 발휘해야만 한다. 범용부품 시장에서 압도적 점유율을 확보하는 것은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있어 중대한 사안이다. 특히 신흥국 시장에서 부품의 범용화를 추진함으로써 자동차 전체의 비용절감을 도모할 수 있다. 현재 덴소는 흡기압력 센서, 회전각 센서 등에서 세계 최고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덴소에게 있어서 애프터마켓에서의 승부는 기술 상승의 원동력이 된다. 캡티브 마켓에만 의지한다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얼리 & 퀵
1949년 권선기술에서 출발한 니혼덴소는 창업 15년이 되던 1964년 “세계 속의 덴소”를 선언하며 세계화 전략을 추진했다. 1996년 사명에서 ‘니혼’이 빠진 것은 덴소의 목표 달성이 가까워졌음을 의미했다.
덴소를 크게 발전시킨 원동력 중 하나는 아이러니 하게도 현재 세계 1위를 다투는 경쟁자 보쉬다. 때문에 보쉬는 타도의 대상이 아닌 파트너이자 선의의 경쟁자인 셈이다. 과거 보쉬는 동ㆍ서독 간 냉전체제 심화로 인한 불안으로 기술제휴처를 해외에서 찾았고, 자동차 신흥국 일본의 덴소를 점찍게 됐다. 1953년 보쉬와 기술제휴를 맺으면서 독일의 ‘장인정신’, 기술과 철저한 품질 관리의 노하우가 덴소에 이전됐다. 그리고 1967년 독자 반도체 기술 보유를 위한 대규모 투자가 단행되면서 전장기업 덴소의 세계화 전략의 전환점이 됐다.
대개 첨단 기술 아이디어는 유럽 기업에서 나오고 상용화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이제는 덴소가 그 같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조기 상용화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1991년 설립된 기초연구소는 세대를 앞서가는 덴소 기술의 핵심 추진체다. 기초연구소에서는 선행이 아닌 선선행 기술의 검토와 개발이 이뤄진다. 예를 들어, 반도체 부문에서는 차세대 IGBT 개발 및 SiC 파워 소자 개발 등 첨단 기술의 심화가 진행된다.
최고의 기술이 세계 1위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보쉬와 콘티넨탈이 거점인 유럽에서 각각 53%, 58%의 매출 비중을 지닌 데 반해 덴소의 아시아 매출 비중은 68%로 좀 높은 편이다. 톱 서플라이어는 활발한 해외시장 연구 및 조사, 글로벌 협력을 통해 기술의 리더가 돼야만 한다. 이를 위해 덴소는 유럽과 미국의 선진시장에서 기술을 가장 먼저 상용화시키고 매출을 늘리는 이른바 “얼리 & 퀵” 전략을 수행 중이다. 덴소에게 있어 그들이 과거에 그랬듯이 한국과 중국의 ‘카피 & 퀵’은 경계의 대상이고, 유럽 서플라이어들은 언제나 벤치마킹 대상이다.
덴소는 커먼레일 시스템의 교훈을 잊지 않고 있다. 1995년 ‘ECD-U2’ 커먼레일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실용화했지만, 승용차 시장 개척자는 보쉬였다. 시장 정보력 부재로 후발주자인 보쉬의 기술추격 속도를 과소평가했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덴소의 소형 커먼레일 시스템은 그로부터 4년 후인 1999년 토요타 아벤시스를 통해 상용화됐다.
협력과 정보
덴소는 해외에 거점을 만들어 각국에 퍼져 있는 생산시설과 기술센터(기술개발 거점)에 인력을 파견해 미래시장 예측을 위한 연구 및 조사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에 설립한 아르헨 기술센터를 비롯한 독일의 2개소, 그리고 이탈리아, 영국, 스웨덴, 프랑스 등지에 각각 1개소의 기술센터를 두고 있다. 이 곳에서는 하이브리드 및 전기차, 전자 시스템, 엔진 ECU 등의 R&D가 진행되고 있다. 물론 한국에도 곧 기술센터를 설립한다. 이곳에서는 커먼레일 시스템, 정보안전 부분에서의 R&D와 양산개발이 진행된다. 덴소풍성 등에 기존의 소규모 연구소가 있지만 모터 등의 R&D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덴소는 반도체 센서를 미국 테네시 공장에서 소량 생산하고 있을 뿐이지만, 향후 파워 모듈의 유럽 생산을 개시할 방침이다. 동남아시아에서도 생산 거점을 확보했다.
해외 거점을 통해 덴소는 차량용 반도체, 소프트웨어의 미래 등과 관련 유럽, 미국, 한국 등의 기술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유럽의 자동차 산업에 영향력 높은 독일의 자동차공업회 등의 표준사양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프라운호퍼 연구소 등 유럽 굴지의 연구소들은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지 등을 모니터링하고 회사 전략에 반영하고 있다.
덴소에게 있어서 차별화와 표준화의 밸런스는 언제나 어려운 문제다. 최고의 기술이 반드시 통용되거나 표준화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덴소는 세계 표준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어디서 무엇을 차별화해 나갈 지를 세계의 파트너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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