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가전기기나 산업기기에 고집적 반도체 칩이 많이 사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강력한 불법 전파에 의한 전자회로의 오작동에 대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꺼져 있는 석유난로가 갑자기 점화되어 화재가 일어난 예도 보고되고 있다. 이것도 점화장치의 전자회로가 오작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자동 가속 제어 기능을 장착한 자동차가 급발진하는 사고도 종종 일어나고 있다. 그 원인이 확실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강력한 전계에 전자회로가 노출된 때문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불법 무선국의 수는 크게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불법 무선국에 의한 피해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불법 무선국은 별도로 치더라도 일반 자동차에서도 적든 많든 전파 노이즈가 방사되며, 이에 대한 대책이 충분치 않은 경우에는 방송 수신 장해를 일으키는 사례가 있다. 가장 에너지가 큰 것은 엔진 점화 플러그의 불꽃 방전에 수반하는 전자 노이즈다. 전파는 파장에 가까운 금속 도체와 공진하며 금속 도체를 안테나로 해서 방사된다. 자동차의 금속 바디 치수에 가까운 파장은 VHF대 전파이다. 점화 플러그의 불꽃 방전은 낮은 주파수에서 높은 주파수까지의 성분을 포함하지만 금속 바디가 안테나 역할을 하여 VHF대의 공중파 방송 수신 장해를 일으킨다.
전자화의 그림자
와이퍼의 모터가 구동하면 카 라디오에 잡음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DC 모터의 라디오 불꽃 방전이 발생하는 전자 노이즈에 의한 것이다. 이 노이즈를 제거하기 위해 콘덴서와 배리스터가 이용된다. 배리스터는 단자 간에 정격전류 이상의 전압이 가해지면 저항치가 급격히 저하, 접지하는 소자이다. 차량용 DC 모터에는 링 배리스터를 이용하여 전자 노이즈의 방사를 크게 줄였지만, 노이즈 대책이 미비한 오래된 연식의 자동차에서는 상당히 강한 전자 노이즈가 방사된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나 연료전지차의 구동 모터에는 브러시리스 모터가 사용된다. 그렇다고 해서 노이즈 문제에 안전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불꽃 방전에 의한 방사 노이즈가 없는 대신, 이런 종류의 모터를 구동하는 전자회로에서 스위칭 노이즈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요즘 자동차는 전자 시스템의 복합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사람을 태우고 달리는 만큼 자동차에는 일반 전자기기 이상의 엄격한 노이즈 대책이 필요하다.
오늘날 자동차는 파워트레인, 바디, 안전, 정보통신 등 기본 시스템으로 구성되며 다수의 서브시스템이 기본 시스템을 지원하고 있다. 서브시스템의 전자제어는 30여년 전 있었던 배기가스 규제와 연비 향상 요구가 발단이 되었다. 기계적 기구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무리였기 때문에 전자 제어가 도입되었다. 센서와 마이크로컨트롤러에 의한 최적 제어를 실현하는 전자제어장치(ECU)는 요즘 기준으로 자동차에 10개에서 많게는 100개 이상 탑재된다. 초기에는 이 장치들의 전자제어를 개별적으로 탑재했기 때문에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동선의 와이어가 차츰 증가하여 다발을 이루게 되었다. 그 결과 공간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무시할 수 없는 중량 증가를 초래했다. 결국 공간 절약과 경량화를 도모하기 위해서 도입된 것이 바디계의 차량용 네트워크 프로토콜인 CAN 버스이다.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CAN 버스는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1억 노드 이상이 도입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CAN 버스는 125Kbps 이하와 1Mbps의 두 계통이 자동차에 혼재하여 사용되고 있다. 저속 CAN 버스는 보통 좌석이나 윈도 동작 제어, 기타 간단한 유저 인터페이스 등의 바디계 제어 전자장치를 관리한다. 반면 고속 CAN 버스는 엔진 제어나 안티록 브레이크(ABS), 크루즈 컨트롤(ACC) 등의 중요한 실시간 제어 기능을 실행한다. 또한 최근에는 유압을 대신하여 전기로 구동하는 바이-와이어(브레이크 바이 와이어, 스티어링 바이 와이어 등)가 활발히 도입되고 있으며, 이들을 제어하는 파워트레인계의 차량 네트워크로서 FlexRay가 등장했다.
FlexRay는 외적 요인에 좌우되지 않는 확정적이면서도 무결함성(Fault tolerant) 특성을 제공하고 분산제어 시스템을 지원한다. 이와 함께 고속의 대용량 전송을 지원하는 멀티미디어계 차량 네트워크인 MOST도 이미 50여 종 이상의 모델에 탑재되었다.
네트워크 와이어의 역기능
차량용 네트워크는 이른바 자동차의 신경망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자동차를 사람을 태우고 달리는 로봇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똑똑한 로봇이 오히려 노이즈에 취약할 수 있다. 실제로 산업용 로봇이 전자 노이즈로 인해 오동작을 일으켜 인사사고를 낸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자동차 바디는 노이즈의 안테나가 될 수 있다. 차량용 네트워크의 케이블 역시 단순한 전선이 아니라 노이즈의 안테나가 될 수 있다. 또한 차량용 네트워크의 구성은 같아도 배선이 차종마다 달라 케이블의 길이와 감는 방법에 따라서도 노이즈의 발생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예를 들면, 케이블과 그랜드(바디)가 바퀴 모양같이 되면 루프 안테나처럼 기능해서 노이즈는 훨씬 더 방사되기 쉬워진다. 이러한 방사 노이즈는 정전결합과 자기결합에 의해서 신호 라인에 침입하여 커먼 모드 노이즈 전류가 된다.
오늘날 전자기기의 주요 노이즈 문제는 커먼 모드 노이즈에 의한 회로의 오동작 문제이다. 고속화에 수반하는 집적회로의 저 구동전압화에 의해 커먼 모드 노이즈 대책은 훨씬 더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커먼 모드 필터는 차동 모드의 신호 전류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커먼 모드 노이즈만을 저감하는 노이즈 대책 부품이며 일반 전자기기는 물론 안전성이 무엇보다 중시되는 자동차 전자장치에서는 빼놓을 수 없다.
케이블을 끼워 넣어 사용하는 클램프 필터도 커먼 모드 필터의 일종이다. ECU나 차량용 컴포넌트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해도 케이블과 접속하면 큰 노이즈를 방사하거나 노이즈에 약해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클램프 필터는 조립 후에 발생한 노이즈 문제에서도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기도 하여 중요한 노이즈 대책 부품으로 활용되고 있다.
차량용 네트워크 시스템을 커먼 모드 노이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차량용 네트워크의 각 노드에 커먼 모드 필터를 장착하는 것이다. 다만, 열악한 조건에서 사용하는 자동차용 전자부품에는 일반 전자기기와 비교해서 훨씬 뛰어난 내진동성, 내충격성, 내열성 등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창과 방패
자동차는 끊임없이 안전성과 편리성을 추구하며 전자화되고 있다. 더욱이 점차 강화되는 배기가스 규제로 새로운 동력원이 필요해짐에 따라 전자공학의 힘이 강하게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기계적 방식을 전자식으로 전환하는 일이 단순히 규제에 대응하거나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 되어서는 안된다. 기본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대명제가 전재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자동차의 전자화와 지능화 시대의 필연적인 요구이라 할 수 있다.
요즘 자동차에는 능동/수동 안전장치의 장착이 크게 늘고 있다. 모두 적든 많든 전자장치에 의해 제어되고 있다.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는 이러한 전자장치는 어떤 위험 요소에도 내성이 있어야 하며,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노이즈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노이즈 대책이라는 것은 제품마다 대응 방법이 다를뿐더러 노이즈원을 찾아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 자동차에 네트워크 통신이 확대 도입되면서 노이즈 문제 또한 증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노이즈 문제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도 한계가 있으며, 때론 경험이 효과를 발휘할 경우도 있다. 간단히 와이어 하니스의 위치를 바꾸기만 해도 노이즈의 발생 상황이 변할 수 있다. 점차 차량용 네트워크의 도입이 본격화됨에 따라 노이즈 문제 또한 증가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풍부한 아날로그 지식과 오랜 경험이 있는 엔지니어, 검증된 노이즈 대책부품 등을 확보하는 것이 문제에 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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