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안전검증이 차량 개발 과정에서 연구개발(R&D)을 보조하는 수준을 넘어 핵심 개발 방식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오토리브(Autoliv)가 도요타를 자사 ‘인체 모델(Human Body Model, HBM) 안전 솔루션’의 첫 고객으로 확보하면서, 가상 충돌시험을 실제 개발 공정에 편입시키려는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파비앙 뒤몽(Fabien Dumont) 오토리브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가상시험은 차량 안전개발에서 점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HBM 안전 솔루션은 충돌 상황에서 인체의 반응을 상세하게 분석해 개발 초기부터 안전 성능을 평가하고 최적화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말했다.
글로벌데이터(GlobalData)는 이번 오토리브 HBM 안전 솔루션에 대한 토요타의 평가 참여가 자동차 업계에서 가상 충돌시험을 실제 개발 프로세스에 적용하려는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마두찬다 팔리트(Madhuchhanda Palit) 글로벌데이터 자동차 담당 수석 애널리스트는 “이번 협력이 확대되면 오토리브는 안전벨트와 에어백 등 승객 보호 시스템에 소프트웨어 기반 분석 역량을 결합해 기존 CAE 및 시뮬레이션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토요타 역시 안전 성능과 개발 효율성이 중요해지는 환경에서 의사결정 속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설계 초기부터 안전성 검증
이번 협력은 안전검증을 차량 개발 초기 단계로 앞당기는 ‘시프트 레프트(Shift-left)’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디지털 시뮬레이션을 설계 초기에 활용하면 개발 후반부의 설계 변경을 줄이고 실제 충돌시험에 투입해야 하는 시험 프로그램을 보다 효율적으로 구성할 수 있다.
오토리브는 이를 통해 기존 부품 공급업체의 역할을 넘어 완성차 업체의 엔지니어링 프로세스에 더 깊게 참여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가상 시험 결과와 실제 시험 데이터를 연계해 안전 시스템의 설계와 최적화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협력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
토요타는 HBM을 활용해 인체 상해 메커니즘을 보다 이른 단계에서 분석함으로써 탑승자의 체형과 착좌 자세 등에 따른 안전 시스템의 설계 조건을 세밀하게 검토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가상 시뮬레이션 결과와 실제 차량의 안전 성능 목표 간 정합성을 높이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중국 완성차와 글로벌 브랜드 ‘투트랙’ 전략
이번 토요타의 참여는 오토리브가 지난 7월 중국 완성차 업체인 샤오펑(Xpeng), 창청자동차(Great Wall Motor)와 맺은 파트너십과도 연결된다. 글로벌데이터는 이를 빠른 개발 주기를 가진 중국 완성차 업체와의 협력으로 적용 범위를 넓히는 동시에 글로벌 완성차 업체인 토요타를 통해 기술 신뢰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했다.
토요타 입장에서도 외부의 검증된 개발 도구를 활용하면 자체적으로 인체 모델링 기술과 시뮬레이션 체계를 처음부터 구축하는 데 필요한 비용과 복잡성을 줄이면서 차량 개발 속도를 높일 수 있다.
팔리트 애널리스트는 “오토리브와 토요타의 이번 협력은 가상 충돌시험이 실험적인 부가 요소가 아니라 운영상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업계의 실용적 방향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토요타 입장에서 잠재적 이점은 상해 메커니즘에 대한 조기 통찰력 확보와 디지털·실물 검증 간 균형을 맞추는 효율성 향상”이라며 “시간이 지나면서 이 같은 기술의 폭넓은 채택은 업계 전반의 가상 안전성 검증 기준을 높이고, 시뮬레이션 정확도와 워크플로 사용 편의성, 실제 결과와의 상관관계를 둘러싼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오토리브 HBM Safety Suite
■ HBM Safety Suite
오토리브의 HBM Safety Suite는 차량 충돌 상황에서 탑승자의 신체 반응을 가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안전개발 플랫폼이다. 고도화된 인체 모델(Human Body Model, HBM)과 분석 및 시각화 도구를 결합해 탑승자와 차량 구조물, 안전 시스템 간 상호작용을 분석하고 개발 초기부터 안전 성능을 평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전통적인 충돌시험용 더미보다 세밀한 인체 해부학적 정보를 기반으로 다양한 충돌 조건과 탑승자 특성에 따른 부상 위험을 분석할 수 있다.
■ SAFER HBM
HBM Safety Suite에 통합된 SAFER HBM은 스웨덴 샬머스공과대학교(Chalmers University of Technology), 오토리브, 볼보자동차가 개발을 시작한 인체 모델이다. 이후 프라운호퍼-샬머스 센터(Fraunhofer-Chalmers Centre)가 창립 기관들과 함께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성별, 연령, 신장, 체중 등 다양한 도로 이용자의 특성에 맞춰 모델을 변형할 수 있으며, 조직의 응력과 변형률 등을 활용한 부상 분석을 지원한다.
■ Euro NCAP과 HBM
HBM의 활용은 유럽 신차 안전성 평가 프로그램인 Euro NCAP의 향후 평가 체계와도 연계된다. 오토리브에 따르면 SAFER HBM은 Euro NCAP 프로토콜 V1.0(CP-550)의 인증 요건을 충족한다. Euro NCAP은 2026년부터 제조사가 충돌 시뮬레이션에 제출하는 HBM 활용 여부를 공식적으로 수집·검토하기 시작했고, 2026~2028년에는 HBM 기반 평가 프로토콜을 개발할 계획이다. 2029년 이후에는 여성 인체 모델과 보다 세분화된 부상 지표 등을 포함해 HBM 데이터가 차량 안전성 평가에 반영될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 가상시험과 물리시험의 결합
오토리브는 HBM 기반 가상시험을 물리적 충돌시험을 대체하는 기술이라기보다 이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제시하고 있다. 가상시험을 통해 차량 개발 초기 단계에서 다양한 충돌 조건과 탑승자 특성을 검토하고, 실제 충돌시험과 함께 활용해 안전개발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HBM Safety Suite의 주요 목적이다.
AEM(오토모티브일렉트로닉스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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