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일반적인 승용차에는 수십 개, 고급차의 경우 100개 이상의 전자제어장치(ECU)가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전자부품이 차량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꾸준히 상승하여 경차의 경우 15~20%, 고급차의 경우 30% 정도, 하이브리드 카의 경우에는 무려 50% 가까이 된다고 한다. 토요타자동차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를 6인치 웨이퍼 크기로 환산하면 콤팩트 세단의 경우에 0.21wfs, 콤팩트 세단에 카내비게이션 시스템을 탑재한 경우에 0.48wfs, 하이브리드 카에 카내비게이션 시스템을 탑재한 경우에는 0.96wfs나 된다고 한다. 표준 퍼스널 컴퓨터가 0.12wfs 정도임을 감안하면 결코 적은 수량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물을 들여다보면 마이크로컴퓨터, 메모리, 로직, 바이폴러 트랜지스터, 파워 MOSFET, IGBT, 파워 다이오드 등 다양하다. 이 중 디지털 회로가 차지하는 비율이 5%, 고전력 구동 회로가 35%, 아날로그 회로가 34%, 기타가 26%라고 한다. 이 정도로 많은 반도체 부품이 차량에 탑재된다면, 소프트웨어 양도 그에 못지 않을 거라 충분히 예측이 가능하다. 선진 자동차 메이커의 예를 들면, 1980년경에 불과 1천행 정도였던 코드 라인수가 2005년경에는 100만 행을 넘어섰다고 한다. 실제로 토요타의 렉서스 브랜드인 LS460은 1천700만 행이나 되며 2015년에는 코드 사이즈가 1억 라인이 될 것으로 자체 예측하고 있다. 이에 따라, 차량용 전자 시스템의 개발 공정 가운데 80% 이상을 소프트웨어 개발이 차지할 전망이라고 한다. 소프트웨어의 규모가 커지면 개발 부담이 증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소프트웨어의 불량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소프트웨어 개발에 따른 버그 발생률은 소프트웨어 양의 증가율에 대해 지수함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100만 행 이상의 코드를 갖는 거대한 소프트웨어 시스템의 경우 2만 개 이상에 달하는 오류를 가질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소프트웨어 양의 증가율에 상응하는 불량 발생률의 관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판단을 쉽게 내릴 수 있다. 이처럼 불량률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면, 개발효율의 악화는 물론 비용이 증가하고 더 나아가 최악의 경우 시스템의 신뢰성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어 회사 브랜드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키게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자동차업계에서는 두 가지 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첫 번째는 전자제어장치의 표준화다. 보통 전자 플랫폼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차체의 플랫폼을 표준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차량 전체를 조망하면서 전자장치의 패키지를 통합하는 활동이다. 전자장치 패키지의 표준화를 진행함에 따라 전원, 차량용 네트워크, 전선 배선 등의 인프라와 전자부품 자체의 개발 종류를 대폭 줄일 수 있게 되어 그 효과는 익히 알려진 바와 같다. 두 번째는 소프트웨어의 개발 효율을 향상시키기 위한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표준화다. 차량 전체의 ECU 부품을 구조화하고, 여러 ECU에서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플랫폼과 그 위에서 동작하는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를 분리하여 개발하려는 시도다. 그런데, 서플라이어 입장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은 중요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특히, 개발능력이 뛰어난 서플라이어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흐름이 반가울 리 없다. 서플라이어가 자발적으로 서로 협력해 공통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개발하는 것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공통 소프트웨어 플랫폼은 자동차 메이커가 개발해 각각의 서플라이어에게 공급하고, 서플라이어는 전자 플랫폼 상에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게 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개발 기법은 휴대폰 개발에서는 일반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자동차업계에도 이러한 기법이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그동안 ECU 전체를 개발해오던 서플라이어의 입장에서는 업무 범위가 좁아지리라는 위기감과 함께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보다 ECU 시장이 작아진다면 비즈니스가 감소하겠지만 현 추세는 정반대로 ECU 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면, ECU 계층 구조에서 지금까지 분리되었던 바디계, 파워트레인계, 새시계, 멀티미디어계가 하나로 통합되어 가는 추세인 동시에 손발에 해당하는 기능도 진화하여 ECU 수는 오히려 더욱 늘어나고 있다. 이와 함께 ECU의 소프트웨어 개발 추세는 계속해서 복잡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전략은, 밖으로 AUTOSAR 같은 차량용 소프트웨어 표준화 활동에 적극 대응하는 것이다. 안으로는 제어 기능 및 성능 향상에 전념하는 시스템 엔지니어와 그것을 구현하는 소프트웨어의 최적화에 전념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각각의 전문 분야에서 상호 의사소통을 꾀함으로써 경쟁력 있는 제품을 개발해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자동차에서 소프트웨어 기술은 자동차산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열쇠를 쥐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멀지 않은 장래에 소프트웨어가 먼저 설계되고 전자장치와 자동차는 빠르게 발전하는 소프트웨어의 역량을 최대한 지원하는 방향으로 디자인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그동안 자동차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많은 전문가들의 견해가 지면을 통해 소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이 수차례 언급한 논리와 데이터를 재인용하면서까지 굳이 사족(蛇足)을 길게 단 이유는 그들의 주장을 자동차업계가 ‘깊이’ 공감하기를 바램에서다.
<저작권자 © AEM.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