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는 불과 몇 개월 만에 세계 자동차산업을 호령하던 미국 자동차 빅3를 파산 위기로 몰아넣었습니다. 이는 미국 자동차산업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비단 미국뿐 아니라 각국의 자동차산업도 예외 없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자동차산업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경제위기 속에서 불황의 그림자가 가장 짙게 드리워진 곳이 돼버렸습니다. 올해도 자동차산업 침체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은 어깨를 더욱 무겁게 짓눌러옵니다. 자동차산업은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버팀목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각계 전문가들은 최근 자동차산업 환경이 한국 자동차업계가 산업 판도를 바꿀 주역으로 부상할 절호의 기회라고도 말합니다. 그러면서 정부와 자동차업계의 ‘역할론’을 재차삼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전 세계 자동차업계가 처한 극한 ‘서바이벌 게임’에서 살아남는 회사는 불황 이후 새로운 강자로 도약하는 최고의 기회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불황의 늪은 점점 깊어만 갑니다. 학계 일각에서는 장기 불황의 늪에 빠져들 가능성마저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자동차업계에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른 것이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고 하는 개념입니다. 세계적 금융위기의 원인이 된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도 이러한 지속가능성의 결여로부터 잉태된 산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에 대한 기대에서 리스크가 높은 금융상품을 대량으로 판매하여 단기적인 이익을 추구했던 많은 기업들이 서브프라임 사태로 결국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단기적인 이익만을 추구했던 기업들의 참담한 끝이었습니다.
요즘 자동차업계가 느끼는 위기감은 상상 이상입니다. 부품협력업체들은 하루하루 발등에 불부터 꺼야 할 처지입니다. 먼 미래까지 챙길 여유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 또한 늦출 수 있는 과제입니다.
릭 왜고너 GM 회장은 “주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유럽 현지 임직원들을 격려하고 판매를 독려하는 자리에서 “‘현지인이 원하는 디자인과 사양을 적용한 차’를 제때에 개발·공급해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조선일보 2009년 2월 6일자 보도)”고 언급한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과는 사뭇 다른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왜고너 회장에겐 “고객이 만족할 가치”를 높이는 것보다 “주주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해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단기적인 성과에 골몰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주요 완성차 업체에서는 자동차시장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2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자동차업계는 명암이 극명하게 갈리게 될 것입니다. 기대처럼 한국 자동차업계가 산업 판도를 바꿀 주역으로서 부상하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동차업계가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 자동차 빅3 CEO들이 상원 청문회에서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모습은 결코 용기 있는 자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기회를 구하는 것도 용기라고 합니다.
이제 우리 자동차업계가 혹독한 자기반성 위에 지속가능성의 조건이라 할 수 있는 신뢰, 높은 품질 유지, 끊임없는 R&D 투자 등을 통해 이번 위기를 정면 돌파하려는 의지를 보인다면 국민들이 함께 하리라 믿습니다. 딴나라(?)처럼, 비굴 모드로 애국심에 호소하고 겁주는 추한 모습을 닮지 않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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