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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AY
“제네럴모터스(GM)의 기념비적인 디데이(D-Day)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디트로이트와 미시간 주에게 있어 최고의 날입니다. 물론 미합중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여기 있는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던 꿈을 우리가 실현했습니다. 새롭게 태어난 뉴GM의 서막이 열렸습니다.”
GM이 주식을 재상장한 지난해 11월 18일 오후 4시 GM 본사. 뉴GM의 댄 애커슨(Dan Akerson) CEO가 말하자 자리에 모인 수백여 명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사방이 유리로 덮힌 윈터가든에는 GM의 임직원들을 비롯해 딜러, 하청업체, 시와 정부기관 관계자, 전미자동차노조(UAW) 간부 등이 운집했다.
애커슨 CEO는 이 날 오전 9시 뉴욕증권거래소(NYSE) 재상장 기념 오프닝 벨을 쉐보레 카마로의 엔진 음으로 대신했고, 재빨리 디트로이트로 돌아와 축하연을 펼쳤다. 거인은 자신감을 회복했다.
수차례 한국을 방문했고 ‘왜 GM이 중요한가(Why GM Matters)’의 저자로 유명한 윌리엄 홀스타인(Willian Holstein)은 “GM의 재상장은 미국식 정치경제 시스템이 훌륭하게 기능하고 있다는 매우 긍정적 메시지”라고 평가했다.
GM에게 있어 남겨진 과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지만 지난 1년 반 이상 철저한 자기개혁을 실행하며 글로벌 가격 경쟁력, 제품 개발력을 회복했다. 예를 들어 쉐보레 크루즈 시승식에서 크루즈 옆에 혼다의 시빅과 토요타의 카롤라가 놓여 있었는데 이런 일은 과거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GM이 일본 자동차를 뛰어 넘을 만한 경쟁력이 없다는 것은 GM 직원들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GM의 실적은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순풍을 타며 탄력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2010년 한 해 GM은 전 세계적으로 총 838만 9,769대를 팔아치웠다. 이는 전년대비 12.2% 증대된 실적이다. 주요 10개 시장 중 중국의 28.8% 신장을 포함해 5개 시장에서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했다.
애커슨의 축하 연설은 30분 간 진행됐고 이어 록밴드의 라이브 연주가 시작됐다. 한켠에 마련된 쇼룸에는 잘 차려진 요리가 준비됐는데 대부분의 GM 직원들은 손도 대지 않고 각자의 일터로 돌아갔다. 아직 일이 남아 있고, 오늘도 퇴근이 늦어질 것이란게 이유였다.
파산한지 1년 반 만에 GM은 부활했다. 미국은 물론 중국시장 점유율에서도 일본 업체들을 능가했다. 또 미래의 상징인 친환경차 부문에서는 EREV 쉐보레 볼트를 발매했다.
생명선 중국
11월 18일은 GM의 재상장뿐만 아니라 쉐보레 볼트가 LA에서 올해의 그린카(2011 GreenCAR of the Year)로 선정된 날이기도 했다. 이보다 완벽한 하모니는 없었다.
LA오토쇼에서의 최종 심사에는 볼트 외에 닛산의 전기차 리프가 올랐었다. 이와 관련해 일본 메이커의 한 관계자는 “어차피 짜고 치는 고스톱같은 것이라 볼트의 수상은 당연한 것”이라고 폄하했다. 절묘한 타이밍에 볼트가 수상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GM의 재상장 또한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11월 이전인 2010년 3/4(1~9월)까지 GM의 매출액은 987억 달러, 순이익은 42억 달러였다. 실적이 급속히 개선되고 있었는데 특히 7~9월에만 순이익이 무려 20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같은 기간 토요타를 크게 능가한 수치다.
북미시장에서 전년동기 대비 5% 증가한 약 194만 대를 판매했고 세전 이익은 약 49달러였다. 판매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SUV와 트럭 판매가 잘됐기 때문이었다. 가격, 이익률이 높은 큰 자동차들이 많이 팔린 것이다. 신흥국에서도 강세였다. 유럽을 제외한 해외 판매가 전년동기 대비 27% 증가한 약 304만 대였다.
특히 GM은 중국에서 2010년 한 해 총 235만 대를 팔아치웠다. 중국시장 점유율은 10%대로 토요타, 혼다 등 일본 메이커를 추월하며 지난 6년 간 가장 많은 차를 판 회사로 기록됐다. 비결은 중국 현지 연구개발 투자에 매우 적극적이고, 다수의 중국인 엔지니어를 고용해 현지시장 수요에 발 빠르게 대처했기 때문이다.
인천상륙 작전
브랜드로는 쉐보레의 인기가 높은데 미국과 달리 중국에선 소형 세단, 해치백 등의 자동차가 많이 팔린다. 트럭이나 SUV의 이미지가 강한 GM이지만 중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중소형차가 강하다. GM은 중국 업체들과 자본 관계를 강화해 글로벌 시장에서 공동전선을 펴고 있다. 예를 들어 상하이자동차는 GM이 재상장할 때 약 1%의 주식을 취득했다.
“중국의 11개 조인트벤처사는 우리의 11개 성공 전략의 핵심이다. GM이 세계시장의 리더로 남기 위해서는 중국에서 반드시 리더로 남아있어야만 한다.”
애커슨 CEO는 2월 15일 베이징에 방문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GM이 향후 2년 간 20종의 신차 및 업그레이드 모델을 출시하고 생산시설 및 로컬 파트너십을 더욱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쉐보레 볼트와 같은 친환경차를 도입하는 등 중국 자동차 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애커슨 CEO가 베이징을 다녀간 지 몇일 후 한국의 GM대우는 한국GM으로 재탄생을 선언했다. GM대우는 총 5개의 제조설비를 가동하는 GM의 주요 생산기지 중 하나다. 쉐보레 모델 4대가 생산되면 그 중 한 대는 GM대우가 생산하고 있다. 2010년 한 해 GM대우는 CKD(Complete knock Down)를 포함해 총 184만 대를 한국과 해외시장에 판매했다.
GM은 3,400여명의 한국 내 임직원을 불러 모은 가운데 쉐보레 브랜드의 출범식을 갖고 재도약의 의지를 다졌다.
한국GM의 마이크 아카몬(Mike Arcamone) 사장은 “쉐보레는 1911년 이후 100년 간 2억 대 이상 판매되며 전 세계 130개국 이상에서 7.4초 당 한 대씩 팔리는 세계 4위의 브랜드”라며 “쉐보레는 단순한 브랜드가 아닌 고객감동과 새 자동차 문화 창출의 신기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GM은 올해 안에 8종의 신모델을 한국시장에 내놓을 작정이다. 한편 회사는 쉐보레 브랜드 출범 원년을 맞아 영업조직의 새 슬로건으로 ‘예스 쉐보레(YES Chevrolet)’를 선포했다. 차체 및 일반부품 보증기간 5년 또는 10만 km, 3년 간 소모품 무상교환, 7년 간 무상 긴급출동이란 사상 유례없는 서비스를 약속했다. 이는 브랜드와 제품, 서비스에 대한 고객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 성공에 대한 자신감을 담은 것이다. YES는 ‘Your Every Success’를 의미한다.
유리해진 환경
GM의 기세가 강렬해진다는 것은 토요타, 혼다 등 일본 메이커들의 북미시장 지위 위축을 의미한다. GM의 상대적 경쟁력 향상은 딜러에게 지급되는 대당 인센티브 추이를 보면 알 수 있다. 또, 재고처분을 위해 거액의 인센티브를 붙여 판매하던 전략도 변하고 있다. 중고차 가치의 격차도 점차 엷어지고 있다. 10곳 이상 공장을 폐쇄한 결과 공장가동률은 대폭 높아졌다. 게다가 GM의 전문 분야인 SUV, 트럭시장이 서서히 회복되는 반면 일본의 강점인 승용차 부문은 여전히 부진해 일본 메이커들은 더욱 압박받고 있다.
토요타와 혼다의 인센티브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GM 때문만은 아니다. 현대자동차로부터 압박받고 있기 때문이다. 주력인 C세그먼트의 캠리, 어코드와 경쟁하는 현대의 쏘나타의 점유율은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예전 같다면 일본 업체들끼리 경쟁을 펼쳤기 때문에 엔고에 따른 가격 인상으로 등으로 나름 대응했겠지만 최근엔 원화 절하 혜택을 입은 현대와 기아자동차가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하며 이같은 전략 채택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GM의 최대 맞수인 일본 메이커들이 여러 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는 하지만 GM 역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한다. 상품 자체의 경쟁력 개선은 여전히 절실하다. 전문가들은 “자동차의 완성도가 일본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일본 업체들이 대규모 리콜 등으로 이미지가 많이 실추됐긴 했지만 도장이나 내장 부문의 마무리, 승차감 등의 품질에서 상당한 우위를 보이고 있다. 또 글로벌 제휴 관계에서도 뒤쳐져 있다. GM이 파산해 있는 동안 전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은 친환경 기술, 신흥시장 개척을 위해 다양한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GM의 추격은 이제부터다. GM은 2010년을 보내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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