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큰 축 중 하나인 차량용 반도체 산업에서 인텔이 발을 뺀다. 인텔은 그간 모빌아이(Mobileye)를 통해 자율주행 분야에서 존재감을 보여왔지만, 2024년 실리콘 모빌리티(Silicon Mobility) 인수를 계기로 차량 제어 및 차량 내 컴퓨팅 플랫폼까지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며 본격적인 차량용 반도체 사업 확장에 나섰다. 그랬던 인텔이 이제는 이 사업을 단계적으로 종료한다고 공식 선언한 것이다. 발표는 조용했지만, 업계에 던지는 메시지는 작지 않다.
이번 조치는 7월 중 예정된 대규모 감원의 일환이다. 인텔은 립부 탄(Lip-Bu Tan) 신임 CEO 체제 아래 15억 달러의 비용 절감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번 감원은 최대 1만 명의 직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규모를 감안할 때, 이번 결정은 단순한 사업 조정 이상의 위기감이 읽힌다. 그중 하나가 바로 차량용 반도체 사업이다.
인텔은 "핵심 고객 및 데이터센터 포트폴리오에 다시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클라이언트 컴퓨팅 그룹(PC 중심 사업)의 일부인 차량용 반도체 사업은 더 이상 이 그룹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 부문에서 인텔은 콕핏 디스플레이와 차량 내 AI 기능 가속화를 위한 Arc GPU의 디스크리트 버전을 추가하는 등 나름의 기술 투자와 개발을 이어왔지만, 의미 있는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이번 조치는 인텔의 ADAS 및 자율주행 컨트롤러 칩 설계 자회사인 모빌아이(Mobileye)와는 별개다. 모빌아이는 2022년 분사 이후 상장됐으며, 현재도 인텔이 8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인텔의 결정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첫째, 차량용 반도체는 ‘진입장벽’이 높다는 점이다. 기술력뿐 아니라 자동차 OEM과의 협력, 수년 단위의 설계 반영 사이클, 엄격한 품질 기준 등은 단기간에 따라붙기 어려운 장벽이다. 전통적 PC 중심의 접근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 인텔 내부적으로도 우선순위 재편이 급박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데이터센터, AI 가속기, 파운드리 등 자원이 집중되어야 할 영역이 명확해지면서, 가능성은 있지만 수익성은 낮은 사업부터 정리하는 방식이 채택된 것으로 보인다.
셋째, 이는 반대로 차량용 반도체 시장의 구조적 진입 장벽이 기존 반도체 강자들에게조차 쉽지 않다는 점을 방증한다.
물론, 인텔의 철수가 차량용 반도체 시장의 침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는 전문성과 생태계 기반을 갖춘 업체들에겐 진입보다 '지속 가능성'이 더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주는 신호다. 미래차 패러다임에서 차량용 반도체의 중요성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단순한 기술력 이상의 시간, 경험, 협업 역량이 필요하다.
인텔은 향후 모빌아이를 통해 여전히 자동차 산업과 연결고리를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누구나 차량용 반도체에 도전할 수 있지만, 모두가 살아남을 수는 없다"는 업계의 냉정한 현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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