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우측이 프라샨트 굴라티 CEO.
SDVerse가 짚은 소프트웨어 시대의 진짜 병목은 ‘발견(discovery)과 조달(sourcing)’이다. 이 과정이 느리면 SDV도 결국 느려지며, SDVerse는 이를 ‘몇 달에서 몇 분’으로 줄이겠다고 말한다. 이번 CES에서 그 약속은 AI 기반 조달 엔진과 OEM이 꺼리는 클라우드 이슈까지 고려한 ‘프라이빗 구조’로 현실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글 | 한상민 기자_han@autoelectronic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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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2026은 로보틱스가 쏟아지고, AI가 모든 산업의 표면을 덮는 자리였다. 자동차에서도 SDV, SD, AI-defined vehicle 같은 단어가 매번 새로 등장한다. 기술의 방향은 비슷한데 이름은 바뀐다. 그렇다면 이 단어들이 실제로 ‘현장’을 바꾸고 있는가가 더 중요해진다.
이번 CES에서 SDVerse의 프라샨트 굴라티(Prashant Gulati) CEO, 그리고 플랫폼 확장을 실무에서 이끄는 제프 워커(Jeff Walker) CCO와 프라이빗 룸에서 다시 마주 앉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SDV가 CES의 트렌드로 소비되는지, 아니면 산업이 실제로 소프트웨어 중심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전환의 한가운데서 SDVerse가 왜 필요해지는지, 플랫폼이 AI와 함께 어떻게 ‘진짜 도구’로 바뀌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결론은 이렇다. SDVerse가 말한 핵심은 ‘AI가 무엇을 할 수 있나’가 아니라, AI가 들어오면서 발견과 조달의 시간이 구조적으로 줄어드는 것. 그리고 그 변화가 OEM이 현장에서 원하는 방향과 정확히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몇 달 걸리던 작업을 몇 분 안에 하게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우리는 ‘Months to Minutes’를 이야기합니다.” 굴라티 CEO는 SDVerse를 이렇게 요약했다.
이름이 뭐든, 결국 차는 소프트웨어가 된다
미팅에서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유행어 논쟁을 끝낸 대화였다. SDV가 맞느냐, SD가 새로 뜨느냐와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굴라티 CEO는 논점을 ‘코드의 증가’로 돌려놓았다.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습니다. 결국 자동차는 소프트웨어가 됩니다.”
그가 예로 든 숫자는 상징적이다. 차량 한 대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가 오늘날 대략 2억 5,000만 줄 수준이며, 머지않아 8억 줄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숫자 자체보다 중요한 건 방향성이다. 소프트웨어가 차량의 기능, 인터페이스, 사용 방식 자체를 정의하는 시대가 더 깊어지고 있다.
이 지점에서 SDVerse가 겨냥하는 문제는 ‘기능 개발’이 아니다. 기능을 만들기 전에 산업이 먼저 풀어야 할 질문에 대한 것이다.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빨리 찾을 수 있는가가 문제입니다.”
굴라티 CEO의 말은 SDVerse의 포커스를 정확히 보여준다.
SDVerse가 바꾸려는 것은
‘개발’이 아니라 ‘발견(discovery)’의 구조다
SDV 전환으로 소프트웨어는 폭증하는데, 산업의 소프트웨어 조달 방식은 여전히 하드웨어 시대의 관성에 묶여 있다. 현실에서 많은 OEM과 티어가 소프트웨어를 찾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구글 검색을 하고, 컨퍼런스를 돌아다니고, 기존 거래처에 전화를 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쉽게 몇 달로 늘어진다.
특히 RFP/RFI 프로세스는 시작되는 순간 사람과 일정이 붙는다. 요구사항 문서를 뿌리고 답변을 받고 미팅을 잡고 다시 질문을 주고받는다. 이 과정은 결국 이동과 조율 비용으로 번지고, ‘발견’ 자체가 병목이 된다.
“대면 미팅을 하다 보니 이동이 생기고, 일정 조율이 붙고, 문서 질문을 푸는 데만 시간이 걸립니다.” 굴라티 CEO는 느린 구조를 이렇게 설명했다.
SDVerse가 반복해 강조한 포인트는 단 하나다. 조달이 느리면 SDV도 느려진다. 그래서 SDVerse는 개발을 앞당기는 것보다, 개발 이전 단계인 발견을 구조적으로 바꾸려 한다. 먼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찾는 구조를 만들고, 불필요한 내부 개발을 줄여 자본 효율성을 높이는 접근이다.
AI가 들어오자, ‘검색’이 아니라 ‘조달 엔진’이 됐다
이번 CES 미팅에서 가장 큰 업데이트는 AI였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건 “AI를 쓴다”는 선언이 아니다. AI가 들어오면서 SDVerse의 도구가 키워드 검색에서 요구사항 기반 조달 엔진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예전 검색은 단순했다. 주차 보조, 사이버보안 같은 키워드를 넣고 리스트를 본다. 하지만 이번에 SDVerse가 보여준 방식은 달랐다. 엔지니어가 실제로 쓰는 문장을 그대로 입력한다.
“AUTOSAR와 호환되고 양산 검증된 ADAS 스택이 필요하다”
“ISO 21434 기반 요구조건을 만족하는 VCU를 찾고 있다”
“ISO 26262 조건을 만족하는 기능안전 컨설팅이 필요하다”
그러면 결과가 뜬다. 그리고 핵심은 ‘결과 나열’이 아니라 ‘판단 이유’다. 어떤 솔루션은 높은 매칭을 받지만, 양산 적용(production grade)이 아니라 파일럿 단계라서 감점되는 식으로, 왜 점수가 깎였는지까지 설명한다. AI는 검색 결과가 아니라 조달 판단의 근거로 들어온다.
“예전엔 단순한 검색어였지만, 이제는 ChatGPT처럼 문맥을 이해하는 검색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워커 CCO는 이 변화를 이렇게 표현했다.
또 하나의 변화는 요구사항 문서 그 자체다. 요구사항(RFP) 문서를 업로드하면 시스템이 문서를 읽고, 조건에 맞는 공급사 후보를 뽑아낸다. 기존에 2~3개월 걸리던 초기 탐색이 1분 단위로 압축된다. SDVerse가 말한 “Months to Minutes”는 여기서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기능이 된다.
OEM이 클라우드를 꺼리는 이유:
검색이 곧 전략이기 때문
AI 조달 엔진이 빨라질수록 OEM이 더 민감해지는 지점이 있다. 바로 클라우드다. OEM이 꺼리는 것은 “클라우드는 위험하다” 같은 막연한 불안이 아니다. 훨씬 현실적이다.
OEM에게 검색 기록과 요구사항 문서는 곧 전략이다. 지금 어떤 소프트웨어를 찾고 있는지, 어떤 스펙을 요구하는지, 어디를 약점으로 보는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차량 개발 방향이자 사업 의사결정 그 자체다.
“대형 멤버들은 이 검색이 클라우드로 가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무엇을 찾는지’ 알게 되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그건 회사의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굴라티 CEO는 민감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래서 SDVerse는 AI를 참조하되, OEM 데이터가 외부로 공유되지 않는 프라이빗 구조를 강조했다. OEM이 원하는 것은 AI가 아니라, AI를 써도 안전하게 유지되는 구조다.
OEM은 ‘직접 만들까, 사올까’의 학습 여정을 통과 중
SDVerse는 CES 현장에서 여러 OEM들과의 논의 상황도 언급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OEM들이 결국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이걸 in-house로 할 수 있나, 외부 플랫폼이 필요한가, 우리 엔지니어들이 실제로 쓰게 만들 수 있나. 그 과정은 일종의 학습 여정입니다.”
처음에는 내부 개발이 매력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커지고 일정이 밀리면, 결론은 조달 효율로 돌아온다. SDVerse는 바로 그 지점에서 엔지니어가 납득할 수 있는 가치를 보여주려 한다. AI 기반 발견이 중요한 이유는, 조달팀이 아니라 엔지니어가 ‘쓸만하다’고 느끼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FPT Automotive에서 다시 만난 SDVerse. 우측부터, 제프 워커, 프라샨트 굴라티, 그리고 ClearCatalyst Consulting의 브라이언 칼슨.
작은 기업에게는 기회, 큰 기업에게는 스케일이 된다
SDVerse가 시장에서 흥미로운 이유는 규모의 역설 때문이다. 큰 OEM은 큰 공급사만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기업의 특화된 솔루션, 스타트업의 민첩성, 니치한 기술이 필요해진다. 문제는 연결 방식이다.
기존 구조에서는 작은 기업이 OEM 앞에 서는 데 수년이 걸린다. 하지만 마켓플레이스는 그 시간을 줄인다. 작은 기업은 영업 네트워크가 아니라 발견의 구조를 통해 노출될 수 있고, OEM은 검증된 속성으로 비교하면서도 기존 리스트에 없던 공급자를 찾게 된다.
“예를 들어, GM은 보쉬나 포비아 같은 큰 회사와만 일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PopcornSAR나 Methodica 같은 작은 회사와도 일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그 매칭을 가능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굴라티 CEO의 이 말은 SDVerse 생태계의 본질에 가깝다.
다음 단계는 ‘표준이 아니라 상용화’
SDVerse는 스스로를 표준단체로 규정하지 않는다. AUTOSAR, COVESA, SOAFEE, Eclipse 같은 조직들이 표준과 상호운용성을 만든다면, SDVerse는 그 결과물이 실제 비즈니스와 조달 현장에서 상용화로 연결되는 통로가 되려 한다. 오픈소스든 상용 소프트웨어든, 어떤 표준이든 들어올 수 있고 선택은 시장이 한다는 입장이다.
“우리는 표준을 정하는 조직이 아닙니다. 상용화에 집중합니다. 오픈소스든 독점 소프트웨어든 AUTOSAR든 무엇이든 들어올 수 있고, 시장이 결정하게 합니다.” 워커 CCO가 SDVerse의 포지션을 단호히 말했다.
기술이 많아질수록 산업은 더 빠르게 ‘쓸 수 있는 것’을 원한다. SDVerse는 그 지점에서 플랫폼을 툴로 만들고 있고, AI 도입은 그 전환을 가속하는 장치가 된다.
미래가 말해지는 CES에서 SDVerse가 보여준 것은 산업이 당장 필요로 하는 조달의 속도에 대한 것이었다. SDV가 유행어를 넘어 실행으로 넘어가는 순간은 이런 도구가 ‘현장’에 붙는 곳에서 시작된다.
AEM(오토모티브일렉트로닉스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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