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 인텔이 153억 달러에 인수한 비전 기술 업체인 모빌아이(Mobileye)의 창업자 암논 샤슈아 박사가 방한했다. 그는 자신들이 개발한 수학공식 기반의 ‘책임 민감성 안전’ 모델을 적용하면 자율주행차가 사고 책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테슬라의 혁신 동반자 모빌아이가 테슬라와 결별 이후, 우려와 달리 연속 안타를 날리며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인텔과 한솥밥을 먹게 된 모빌아이는 BMW, GM, 폭스바겐, 피아트·크라이슬러, 혼다, 닛산 등과 협력하고 있으며, 2004년 발표한 ADAS·자율주행차용 카메라 칩 EyeQ는 이미 27개 자동차 제조업체가 채택했다. 테슬라에서 모빌아이가 빠진 빈자리를 꿰찬 엔비디아는 GPU 기반의 인공지능(AI)을 개발해 테슬라를 비롯해 아우디 등 자동차 및 부품업체와 연계해 실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모빌아이는 BMW 그룹, 인텔 등과 2021년까지 고도 자율주행(SAE 레벨3) 및 완전 자율주행(SAE 레벨4 및 레벨5) 차에 관한 기술을 개발하고 생산하기 위해 협력한다고 밝힌바 있다. 발표 이후 3사는 자동차 제조사들이 자사 고유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 사용할 수 있는 확장 가능한 아키텍처를 설계 및 개발 중이다.
올해 말까지 협력을 통해 생산된 40대의 자율주행차가 실제 도로에서 운행될 예정이다. 이 뿐 아니라, 모빌아이의 레벨4 시험용 자율주행차 100대에서 얻은 데이터와 여러 학습 내용을 활용해 협업의 규모 효과를 입증하게 된다. 점차 고조되고 있는 자율주행차 ‘두뇌’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자율주행차 ‘두뇌’ 경쟁
지난 10월 18일, 자율주행 분야의 글로벌 키맨 중 한 명인 암논 샤슈아(Amnon Shashua) 모빌아이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 겸 인텔 수석부사장이 방한했다. 18일 서울에서 열린 세계지식포럼(World Knowledge Forum) 참석을 위한 방한이었지만, 그의 일정에는 현대자동차 정의선 부회장과의 면담도 포함돼 있었다.
샤슈아 CEO는 기자간담회에서 자율주행차 상용화의 필수 요건으로 안전 모델 확립을 꼽았다. 그가 최근 발표한 논문은 자율주행차가 책임 있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비난 받을 수 있는 사고를 유발하지 않도록 하는 수학 공식을 제시하고 있다.
기존 방식으론 자율주행차의 안전성 확보 못 해
자율주행차 업계에서는 시장 확대의 걸림돌로 안전성과 경제적인 확장성 확보를 꼽고 있다. 두 문제 중 해결해야하는 시급한 과제는 안전성 확보다. 자율주행차와 일반 차 간의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의 책임을 누가 지냐는 것이 명확해야 자율주행차에 대한 탑승자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 사고에 대한 책임을 자율주행차 개발사에게 떠넘긴다면 처리 비용까지 부담하면서 사업을 진행할 자율주행차 제조사는 없을 것이다.
샤슈아 CEO는 “통계 기반의 안전성 검증 방식으로는 자율주행차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다.”면서 “기존의 데이터 기반 검증 방식을 그대로 자율주행차에 적용하기 어려운 것은 탑승자가 심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 심리적인 안전성을 검증하는데 투입해야 하는 시간과 비용이 천문학적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샤슈아 CEO에 따르면, 1시간에 사람의 운전으로 사망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1백만분의 1이다. 그 결과 미국에서 연간 약 3만 5,000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완전 자율주행차의 사고 책임은 자동차 측에 있다. 연간 3만 5,000명이 인공지능(AI)의 판단 오류로 사망한다면, 이는 사회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샤슈아 CEO는 “소비자들이 충분히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은 시간당 사망 확률을 현재보다 1,000분의 1 더 낮춰, 10억분의 1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샤슈아 CEO는 “자동차 탑승자가 생각하는 안전성 수준은 연간 비행기 추락사고 사망자 수인 30명~40명 수준”이라며 “통계 기반의 안전성 검증 방식으로 이 정도 수준의 안전성 담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주행해 사고 발생 빈도를 따지는 방식으로 이 정도 수준의 안전성을 담보하려면 300억km를 주행해야 가능하다는 것이 샤슈아 CEO의 계산이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400만 대의 자율주행차가 필요하고 매일 20시간씩 도로주행을 해야 한다. 이때 발생하는 트래픽은 500만 페타바이트(1024테라바이트=1페타바이트) 수준이며, 여기에 차량 구입비와 컴퓨팅 처리 비용만 해도 2조 5,000억 달러 이상이 소요된다. 추가로 사고 피해 정도를 가늠할 더미 인형 등을 감안하면 물리적으로 실현하기 어렵고 기업 수준에서도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하다. 인력도 400만 명을 추가로 갖춰야 한다.
사고 상황에 따라 책임 소재 판단
모발아이는 사고 상황에 따라 책임 소재가 어디 있는지에 집중해 자율주행차의 안전성 확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가정한 후 자율주행차를 투입해 사고를 피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만들어 본다는 것이다. 이는 경우의 수를 따져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도로주행을 하게 만들어 사고를 예방한다. 도로 주행할 때 주변 차와 환경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안전거리 확보 등으로 자율주행차가 아예 사고 책임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모빌아이는 미리 결정된 일련의 ‘결함에 대한 명확한 규칙’을 따르는 한 사고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율주행차를 보호하는 수학적 모델을 개발했는데, 이를 ‘책임 민감성 안전 모델(Responsibility Sensitive Safety, RSS 모델)’이라 명명했다. 샤슈아 CEO와 그의 동료인 샤이 샬리스워츠(Shai Shalev-Shwartz)가 개발한 RSS 모델은 책임과 주의에 대한 인간적 개념의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매개변수를 제공한다. 또한 다른 차의 움직임에 관계없이 자율주행차가 사고의 원인이 될 수 없는 ‘안전상태(Safe State)’를 정의한다.
샤슈아 CEO는 “잘못을 규정하는 능력이 핵심이다. 세상에서 가장 운전을 잘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율주행차도 통제할 수 없는 행동으로 인한 사고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가장 책임감 있고 인지능력이 우수하며 신중한 운전자는 자신의 잘못으로 사고를 일으키는 경우가 매우 적다. 특히 360도 시야와 번개처럼 빠른 반응시간을 가진 자율주행차는 사고를 일으킬 확률이 매우 낮다.”며 “RSS 모델은 자율주행 차량이 산업 전반과 규제 당국 간에 합의된 명확한 결함 정의에 따라 ‘안전’으로 정의된 틀 내에서만 작동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RSS 모델이 공개된 표준이란 점에서 모빌아이만이 아닌 자동차 업계와 규제 당국이 함께 참여해 자율주행차의 안전성을 검증하고 합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빌아이는 현재 협력 중인 24개 자동차 제조업체와 논의를 시작했다. 먼저 미국 정부와 공동으로 RSS 모델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24개월 내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와 함께 유럽이나 일본, 한국 규제 당국과도 협의를 병행할 계획도 밝혔다.
기업과 정부 참여 요청
샤슈아 CEO는 자율주행 시대에 앞서 사고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으면 대량 생산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RSS 모델에 대한 업계의 관심을 촉구했다. 그는 탑승자가 운전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5단계의 자율주행차는 현실적으로 2021년~2023년 정도면 상용화될 것이라며, 4단계 수준의 자율주행차는 BMW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를 통해 출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자율주행차와 5G 관련해서는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컴퓨팅 파워가 중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샤슈아 CEO는 자율주행차에 있어 5G는 의존적인 관계가 아닌 유용하지만 보조적인 개념이며 주행과 관련된 모든 결정은 차량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탑승자가 운행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 4단계 또는 5단계 수준의 자율주행차의 등장까지 이제 5년 안팎의 시간이 남았다. 5년이란 시간은 생각만큼 길지 않다. 자율주행 관련 기술과 규범적, 법률적 문제를 논의하고 합의를 이끌어내기까지 부족할 수도 있는 시간이다. 모빌아이가 이번에 화두로 꺼낸 자율주행차의 안전성 확보와 RSS 모델은 더 늦어지기 전에 꼭 짚고 넘어가야할 과제로 시의적절 했다는 평가다.
자율주행차의 안전성 검증은 규제를 담당하는 정부 기관보다 직접 차량을 만들면서 테스트를 진행해 관련 데이터가 많고 이해도가 높은 기업에서 먼저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논의를 쉽게 풀어가는 길이고, 모빌아이가 RSS 모델을 통해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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