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스타` 뜨는 `별`
자동차산업의 선택과 미래
2009년 10월호 지면기사  / 글│박 철 완 박사 <chulw.park@gmail.com> 미국 드렉셀 대학교 초빙조교수

리먼브러더스의 붕괴로 표면화된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09년 9월, 벌써부터 월스트리트발 금융위기는 끝났다는 장밋빛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살다 보면, 1년 후에도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고민이나 어려움이 아니라면 별게 아니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100년 전 대공황 때도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갑작스런 공포가 경제와 사회 전반을 엄습했던 것이 2008년 하반기였다. 마치 세상이 끝난 것 같던 그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고 2009년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금융위기는 이제 먼 이야기가 된 듯한 요즘 분위기다. 금융위기가 엄습한 지 채 1년도 안 돼 이렇게 진정이 된다는 것은 1년 전 위기가 호들갑이었거나, 아니면 아직 채 끝나지 않은 위기의 제 2막(소위 ‘더블딥’이라고 일컫는 것과 비슷한)이 곧 쓰나미처럼 밀려 올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2008년 하반기의 금융위기는 미래형 자동차 산업의 판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고, 그 결과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요즘은 기술적인 변화나 혁신이 산업을 이끌어가거나 변화시키는 시기가 아니라, 바야흐로 금융 환경의 변화에 의해 산업의 방향성이 결정되는 시기이다.
더 이상 꼬리가 몸통을 흔들지 않는가?
(폭스바겐과 포르쉐 이야기 : 자동차 제조사의 합종연횡)

올핸 제법 많은 자동차 회사들 간 합종연횡이 일어났거나 일어날 예정이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결합은 폭스바겐 AG의 포르쉐 합병이 아닌가 싶다. 2008년 상반기 분위기만 하더라도 포르쉐가 폭스바겐을 인수하는 것이 기정사실화된 듯했다. 하지만 2008년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포르쉐는 투자한 파생 상품에서 큰 손실을 입게 돼 폭스바겐 인수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고, 오히려 폭스바겐이 포르쉐를 합병하는 일이 벌어지게 됐다. 포르쉐는 까레라, 까이엔, 까이맨 등으로 대별되는 소위 고속도로 상의 슈퍼카를 생산하는 멋진 회사였다. 최근에는 ‘파나메라’라는 4도어 차량을 포르쉐 사상 최초의 4도어 세단으로(4도어 SUV인 까이엔은 예외로 하고서라도) 데뷔 시켰다. 포르쉐는 기술적인 진보라든가 상품성 측면에서 발전을 거듭해 왔고 더 넓고 깊은 시장을 향해 비상하는 중이었다. 다시 말해 현재의 포르쉐는 기술적으로나 시장성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포르쉐에서 생산한 차라고 하면 그 가격을 기꺼이 지불하고서라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파나메라도 기꺼이 기다리며 열광하는 사람이 도처에 깔려 있다. 포르쉐는 제품도 훌륭하고 시장에서도 환영을 받고 있다. 이것이 포르쉐가 생산하는 고성능 자동차의 현실이다.
그러나, 포르쉐는 제품으로부터 벌어들이는 매출 상 문제가 아닌 파생 상품의 투자 실패가 지금의 포르쉐를 초래했다주 1). 달리 말해 영업 실적이 영업외 실적에 의해 흔들린 상황(이 자체도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형상이라고 할 수 있다)으로 인해 포르쉐의 폭스바겐 인수 계획 자체가 무산됐다고 봐도 무리가 아닐 듯싶다. 물론, 이같은 모습이 두 그룹 합병의 최종적인 진화 형태일런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긍정적인 측면을 본다면, 포르쉐와 폭스바겐의 유전자는 같은 출발선 상에 있었고 한 세대를 넘어 다시 만난 것이기 때문에 기대해 볼만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곧 나올 파나메라의 뒷좌석 2인승 배치를 폭스바겐의 유전자가 이해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일이다주 2). 이처럼 월스트리트발 금융위기는 자동차 산업 판도까지도 흔들어 버렸다.
GM의 몰락, 그리고 새로운 시작 New GM

GM의 몰락은 포르쉐가 처했던 위기와는 또 다른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GM은 만들어내는 브랜드 대부분이 시장에서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시장에서 고객들이 요구하는 저 연료 비용 차량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도 없었다. 노사관계 측면에서도 전미자동차노조(UAW)에게 오랫동안 휘둘려 오면서 최악의 상황에 빠져들었다고도 볼 수 있다. 급기야 파산보호신청을 통해 새로운 New GM으로 거듭날 것을 천명하고 새로운 길을 가기에 이르렀다.
GM이 처한 상황을 돌이켜 보면, 회사의 재무 상태가 악화일로를 걷게 된 것 자체는 GM의 비효율적인 경영 환경과 시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제품군으로 인한 시장에서의 몰락이 시작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회사가 처한 환경에 대한 이해와 체감 자체를 CEO였던 릭 왜고너 수준에서도 이뤄지지 못했다. 전형적인 아메리칸 스타일의 대응은 구제금융 요청을 위한 워싱턴 DC 방문 시 자가용 비행기를 이용한 것이라든가 의회에서 신랄한 비판을 받았던 몇 십 페이지짜리 내용 없는 개혁안(장당 가격으로 환산하자면, 그만큼 뻔뻔스럽게도 비싼 가격을 요구한 종이묶음은 역사상 유래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으로 시작해 GM은 이미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다행히 미정부의 결단에 의해 GM은 CEO의 교체까지 단행하면서 전체적인 리노베이션을 시작하게 됐다.
릭 왜고너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기고를 하면서까지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필자가 읽어본 릭 왜고너의 기고문이나 UAW 대표의 기고문에 따르면, 자신들의 경영 부재와 UAW의 이기적인 정책은 없었다고 강변하면서 변명과 함께 이제는 심기일전해 잘할 수 있으니 도와달라는 말 일색이었다. 더욱이 GM이 망하면 미국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얼마나 큰지 아느냐는 협박조의 뉘앙스도 풍기는 구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두 사람의 기고문이 GM이 그 당시 처했던 상황을 잘 대변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미국 사회의 자정 작용은 이런 아메리칸 스타일의 해결책을 거부하고 New GM을 향한 머나먼 행로를 시작하게 했다. 그러나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재건은 하 세월인 게 현실이다.
GM이 몰락하기 시작하면서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동안 인재의 옥석을 잘 가렸는지도 중요하다. WSJ에 기고하는 몇몇 자동차 전문가들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필자와 비슷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특성 상, 숙련된 미케닉들에 의한 조립이 자동차의 품질로 귀결된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GM에서 생산하는 자동차의 품질 문제가 적어도 1, 2년 안에 몇 번쯤 이슈로 떠오르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이번 구조조정 과정에 GM에서 빠져나간 숙련된 인력의 손실이 조만간 크게 다가올 것이라는 예측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ew GM은 Old GM에 비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회사 차원에서도 정신적으로 새로운 방향으로 무장하고 있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만 새로 나올 The Volt의 연료 비용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하고 있듯이 1 L로 100 km를 간다는 것에 대해서는 명확히 해야 하지 않나 싶다주 3). 새로운 반환점을 막 돈 미국 자동차 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나갈 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현대·기아차가 마침내 미국시장에 안착한 것인가?(미국 자동차 시장의 점유율 변화)

미국 자동차 빅3의 자국 시장점유율은 지난 1년간 계속 감소해 왔고, 일본 자동차 제조사들의 점유율 역시 급격히 떨어졌다. 반면, 현대·기아차 점유율은 오히려 소폭 증가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자동차 시장 규모 자체가 금융위기로 인하여 축소된 여파를 가장 크게 받은 곳은 미국과 일본의 자동차 제조사들이었다는 것이다. 미리 계획되었던 일인지도 모르지만, 일본의 토요타자동차는 이를 계기로 창업자 3세를 CEO로 추대하는 경영개선을 단행했다. 미국 시장에서의 시장점유율 하락으로 인해 회사 재정 사정의 어려움을 일본 정부에다 호소하기도 했다.
미국과 일본 자동차 제조사들의 점유율 하락과 현대·기아차의 점유율 유지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먼저 미국 제조사들의 점유율 하락은 제조사들의 근원적인 문제점과 함께 딜러망의 축소 등 필연적인 문제점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제품에 대한 매력 포인트가 점점 떨어지고, 급기야 당연히 미국차를 샀던 계층마저도 이탈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 자동차 회사들의 점유율 하락이다. 그것도 토요타, 혼다, 닛산이 나란히 미끄러져 버린 것이다. 비록 미국에서 큰 금융위기가 있었다 하더라도 일본 자동차 제조사에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1년간 있었던 변화는 미국 시장 환경의 변화가 가장 큰 변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그간 산적한 문제들이 금융위기와 맞물려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라고 이해가 가지만, 일본 자동차 회사들의 점유율 하락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일본 자동차 회사들의 시장점유율이 하락한 이후, WSJ 등 다양한 경제전문지에서 마치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처럼 다각도로 그 원인을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문제는 일본 자동차 회사가 금융위기 와중에 전체적인 시장 축소와 경제 경색 같은 외부 환경 요인을 제외하면 눈에 띌만한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자동차 회사만큼의 시장점유율 하락을 맞을만한 내부적인 요인은 없었다고 보는 것이 필자의 관점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 많은 전문가들이 일어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수많은 분석도 내놨지만 일본 자동차 제조사들의 점유율 하락에는 모든 자동차 회사가 직면한 요인 이외에 다른 원인이 없다. 따라서 미국 시장에서의 점유율 하락은 이유가 없다는 게 필자의 관점이요 해석이다. 달리 표현하면, 일본 자동차 제조사의 점유율은 언제든지 다시 회복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금 일본 자동차 제조사의 점유율 하락에 대해서는 현대·기아차의 점유율 유지 내지는 소폭 상승에 맞물려 두드러지는 것은 사실이다. 현대·기아차의 마케팅과 더불어 그간의 품질 혁신이 빛을 발하고 있다는 장밋빛 해석도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물론 현대자동차가 작년에 미국에 도입한 제네시스는 회사 이미지를 바꾸는데 나름 성공을 거두었고, 슈퍼볼 광고를 차지한 것 또한 성공적인 도입이었다는 해석이 어느 정도 설명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의 제품 라인업 상에는 제네시스 도입 말고는 마케팅 전략의 큰 변화가 없다. 기아차는 ‘소울’ 도입이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다. 늘 그렇지만 마케팅 전략과 광고는 공짜로 되는 것이 없고 분기별 당기순이익에 조만간 반영될 것이다. 현대·기아차의 전략상 변화는 미국 국민들에게 자동차를 살 때 추가적인 보험을 하나 사서 제공한 것과 비슷하다. 그렇지만 지금 일어난 점유율 변화를 지속시키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정리하면, 미국 자동차 제조사의 점유율 하락은 제조사의 근원적인 문제점이 금융위기로 인해 촉발되었고 파산보호신청에까지 이르면서 그 정점에 달했다. 현대·기아차는 1~2종의 신 모델 론칭이 약간의 영향을 주었지만 금융위기를 기회로 제공한 마케팅 상의 포지셔닝이 점유율에 큰 변화를 준 것으로 보인다.
일본 자동차 제조사들은 제품 라인업이나 품질 측면에서 금융위기 전후로 큰 변화가 없었다. APR 0% 등의 급진적인 판매 조건이나, 혹은 재고 소진 전략이 유례없이 시행되었지만 금융위기로 경색된 미국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금 일어난 점유율 상의 재편은 필자가 보기엔 큰 이유가 없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눈을 돌린 것이 현대·기아차에게 큰 득이 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 와중에 다행인 것은 현대자동차의 YF 쏘나타 출시다.
혹자들은 YF 쏘나타가 제네시스나 에쿠스의 라인을 많이 닮았다고 하지만, 전통적으로 현대자동차의 혁신은 늘 쏘나타의 신 모델 출시에서 시작됐다. 미국 시장에서 현대자동차의 점유율 변화나 상승은 YF 쏘나타의 미국 진출, 이어서 출시될 G 코드로 끝나는 TG 후속 차량들의 미국 시장 진입 후에 그 성공을 논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자동차 제조사와 현대자동차의 점유율 변화는 기술적 또는 내부적으로 큰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가장 큰 변화는 소울에 의한 점유율 변화가 아닐까 싶다), 언제든지 이전 자리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기아차는 그동안 잘 해왔고 앞으로 잘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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