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에 하이브리드 자동차(Hybrid Electric Vehicle, HEV)가 자동차 산업계의 화두가 되면서 일부에서는 HEV를 과학기술계의 유행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실효성과 시장에서의 성공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HEV의 연비를 정밀하게 측정하여 기존 자동차와 비교하는 작업이 아직 진행 중이고 세계 5위의 자동차 산업국인 우리나라에서도 아직 양산되지 않고 있으니, 이러한 의심은 당연한 지적일 것이다.
과연 HEV는 곧 사라져 버릴 한 시대의 유행일까? 아니면 아예 세상에 나올 필요가 없었던 허황된 기술인가? 필자의 부족한 지식으로 인해 감히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국내외 기술개발 동향과 미래 자동차 기술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답을 조심스럽게 탐색해 보고자 한다.
HEV의 특징
기존 자동차는 화석연료를 연소시켜 필요한 힘을 얻어내는 내연기관(內燃機關)을 장착하고 있는데, 인간은 이를 이용하여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엄청난 속도로 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 이 기관이 내뿜는 배기가스로 인하여 대기오염, 지구온난화 및 화석연료 고갈 등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내연기관 자동차와 모터 및 배터리를 사용하는 전기자동차를 결합한 것이 HEV이다. 따라서 HEV에는 엔진 외에 모터(motor), 배터리(battery), 전력 제어 장치, 그리고 새로운 동력 분배/전달 장치 등이 장착된다. 이 부품들은 배기가스 저감, 연료 효율 향상을 위하여 추가되거나 변형된 것들이다.
HEV가 기존 자동차에 비하여 연료 효율이 좋은 이유는 낭비되는 에너지를 최소화하기 때문이다. 기존 자동차는 투입된 에너지의 30% 정도만을 차량 구동에 사용할 뿐만 아니라 제동 시에는 자동차의 운동 에너지를 완전히 낭비하는 반면, HEV는 배터리, 발전기, 모터와 이를 제어하는 복잡한 제어 장치를 통하여 낭비되는 에너지를 최대한 배터리로 끌어 모아서 차량 구동에 다시 사용하기 때문에 기존의 자동차에 비하여 연료 효율이 높아지게 된다.
HEV에 대한 단상
HEV와 핵심 부품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았는데, 중요한 점은 일본이 HEV와 부품 등 모든 면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점이며 미국과 유럽도 이 부분에서는 일본에 뒤진다는 점, 그리고 우리나라의 현대자동차는 일본을 추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HEV 기술이 갖는 의미와 미래 전망에 대해서 논해보고자 한다.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내용의 대부분은 HEV 기술이 과연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집중된다.
HEV와 디젤 자동차
논의의 처음은 HEV와 디젤 자동차의 비교이다. 소음과 진동이 심하고 배기가스 특성이 나쁜 디젤 엔진이 새로운 기술에 힘입어 최근 고효율 청정 엔진으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형 HEV의 경우 하이브리드화에 따른 연비는 18~28 km/l 정도이고 소형 디젤 승용차의 경우 16~24 km/l 정도의 연비를 얻고 있다. 이 정도의 효율로는 HEV가 높은 가격으로 인해 아직까지 상품으로서의 이점이 충분하지 않지만, 향후 배기규제가 더욱 엄격히 시행되면 디젤 자동차의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유럽의 자동차 회사들이 최근에야 HEV 개발에 착수한 것이 이와 같은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문제는 HEV의 가격을 어느 정도까지 낮출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HEV 가격에 대한 논의는 아래에서 다시 하도록 하겠다.
HEV와 연료전지자동차
HEV와 항상 같이 언급되는 미래 자동차 기술의 대표가 바로 무공해 연료전지자동차(Fuel Cell Vehicle, FCV)이다.
필자는 현 시점에서 HEV와 FCV 중, 중점 기술 개발 대상으로 하나를 선택한다면 당연히 HEV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이런 생각의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연료전지의 가격, 즉 FCV의 가격이 어느 정도까지 내려갈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이 부분은 HEV와도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실정이다.
둘째는 수소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 제도의 정비 문제이다. 수소 인프라 구축에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는 수소 연료의 경제성으로, 수소는 자연 상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별도의 에너지를 사용하여 만들어내야 하는데, 지금까지의 기술로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불확실한 실정이다.
반대 주장도 있는데, FCV는 시장 필요성 또는 시장의 선택에 의하여 개발되는 것이 아니라 고갈될 석유 자원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선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여러 주장을 종합하면 화석연료가 고갈될 미래에는 FCV가 시장을 장악할 것이 확실하고 내연기관 자동차와 HEV가 사라지겠지만, 이에 대한 뚜렷한 청사진은 아직 존재하지 않고 있다. 이를 반영하여 FCV 개발에 전념하던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최근 급격히 확대되는 HEV 시장을 잃지 않기 위해 뒤늦게 HEV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HEV와 전기자동차
전기자동차는 HEV와 FCV 개발에 앞서 상용화가 시도되었던 무공해 청정 자동차인데, 전기에너지를 저장하는 배터리의 비싼 가격과 느린 충/방전 속도로 인해 상용화에 실패하였다. 높은 가격은 논외로 하더라도 지금의 자동차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5분 이내에 충전이 가능해야 하고, 운전자가 요구하는 파워를 순간적으로 방출할 수 있어야 하며, 한번 충전으로 500 km 이상의 주행이 가능해야 하는데 지금의 기술로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배터리 충전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것은 FCV와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HEV나 디젤 자동차와 경쟁할 수 있는 기술과 제품이 개발되기 전까지 전기자동차는 하나의 이상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결언
HEV의 미래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는 가격, 즉 기존 자동차와의 가격 차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여러 예측 자료들을 종합하면 이 수치는 약 30%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즉, HEV는 기존 자동차보다 30% 비싼 상태에서 경쟁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 30%의 차액은 에너지 저감 이익과 친환경 자동차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여러 지원 정책을 고려한다면 일반 소비자들에게 설득력 있는 가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의 시점에서는 고효율 디젤 자동차가 가격대비 효율이 가장 좋은 선택일 것이고, 점진적으로 HEV의 가격이 낮아지면서 시장을 분할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고효율 디젤 자동차가 P-ZEV(Partial Zero Emission Vehicle)와 같은 배기가스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배기가스 저감을 위한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거나 특수한 배기가스 처리 장치를 장착해야 하는데 기술적으로 아직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가격 상승 요인까지 안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HEV와의 경쟁에서 불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디젤 HEV의 경우 가솔린에 비하여 25~30% 효율이 더 높기 때문에 확실한 연료 경제성까지 확보할 수 있어서 디젤 자동차 시장을 잠식할 것으로 예상된다.
FCV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미국의 디젤 HEV와 Plug-In HEV 기술개발 움직임은 HEV가 현실적인 친환경 자동차임을 보여준다. 물론 미래에는 완전 무공해 자동차가 거리를 주행할 것이 확실하지만, 그 구동 방식이 전기자동차 형태일 것이라는 것 외에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HEV 기술은 ‘유행’이 아니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무공해 전기자동차 기술이 우리가 확보해야 할 궁극적인 형태라면 HEV에 적용되는 고전압 전기 시스템 기술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점진적으로 기술을 확보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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